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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희망가] 직장암도 전화위복으로~ 홍서영 씨 체험고백2016년 12월 건강다이제스트 감사호

【건강다이제스트 | 허미숙 기자】

“암으로 인해 더 건강해졌고, 암으로 인해 더 행복해졌어요” 

‘어쩌면 그럴 수 있었을까?’ 이야기를 듣는 내내 든 생각이었다. 

아직은 젊은 40대 초반, 느닷없이 직장암 진단을 받았던 사람! 

대장과 항문 사이에 7cm 크기의 울퉁불퉁한 암덩어리를 보았을 때 하늘이 노랬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 번도 죽는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는 사람!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1년 만에 암세포가 없어졌고, 2015년 12월에는 5년 완치 판정도 받았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이야기의 주인공, 모두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고 있는 사람은 경남 창원시 마산 월영동에 사는 홍서영 씨(47)다. 도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10년 12월에…

어느 날 아침 화장실에서 변을 보던 홍서영 씨는 아연실색했다. 변기에 빨간 핏물이 흥건히 고여 있었던 것이다. 등골이 오싹했다. ‘뭔가 잘못됐구나.’

그 후의 일은 지금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부랴부랴 내시경을 찍었고, 바로 그날 청천벽력 같은 소리도 들어야 했다.

“100% 직장암이라고 했어요. 일주일 뒤에 나오는 조직검사 결과는 기다릴 것도 없이 곧바로 서울 큰 병원에 예약부터 하라고 했어요.”

한동안 멍했다. 눈물도 안 나왔다. 아무리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42세에 직장암은 상상조차 못한 일이었다.

온갖 감정의 뒤엉킴 속에서 만감이 교차했지만 홍서영 씨에게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 다음날부터 컴퓨터를 켜고 정보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이제 어떡하지?’ ‘뭘 해야 하지?’ 그 생각부터 했다고 한다.

“어쩌면 그럴 수 있었냐고요? 그것은 아마도 누구보다 열렬히 긍정의 힘을 믿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 당시 홍서영 씨는 남편의 사업실패로 힘든 시기를 겪었다고 한다. 부부 사이도 안 좋았고, 우울증도 심했다. 종종 아파트 13층에서 뛰어내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그런 그녀에게 위로가 되어주었던 것은 조엘 오스틴 목사가 쓴 <긍정의 힘>이었다. 론다 번이 쓴 <시크릿>을 읽으면서 모든 일은 마음먹은 대로 된다는 긍정의 힘을 믿었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암 진단을 받았어도 가슴 아파하고, 울고, 남 탓하는 시간이 짧았다. 홍서영 씨는 “암이 생겼으면 빨리 극복하자.” 그 생각부터 했다고 한다. 

항문만은 살리고 싶어서…

조직검사 결과지를 들고 간 서울 대형병원에서도 직장암이라고 했다. 3기 말쯤 되고 임파선 전이도 된 상태라고 했다. 진료차트에는 N2로 표기돼 있었다. 나중에 남편이 해석을 해줘서 알게 되었지만 N2는 임파선 전이가 4개 이상이라는 뜻이었다. 

병원에서는 수술 일정을 잡자고 했다. 그런데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처음 진단시 직장암과 항문 사이가 너무 가까워서 잘못하면 항문을 없앨 수도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뭐 그리 중하냐고? 사람이 사는 게 중요하지! 의사에게 면박까지 당했지만 평생 동안 변을 옆구리로 받으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또 물었다. “항문은 살릴 수 있어요?” 

그러자 담당의사는 “수술을 해봐야 알 수 있지만 다 제거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래서 무작정 매달렸어요. 항문은 살려 달라고. 그랬더니 의사는 우선 항암과 방사선부터 하자고 했어요. 암세포의 크기를 줄여서 수술을 해보자고 했어요.” 

그렇게 시작된 항암과 방사선 치료는 고통스러웠다. 항암 6회, 방사선 25회를 받는 동안 엉덩이는 핏덩이가 됐다. 벗겨지고 짓무르면서 거동조차 잘 못했다. 

“그래도 항암제 맞으면서 ‘보약 넣어주세요’ 했어요. 또 ‘보약 잘 들어간다.’고 말하면서 맞았어요. 그렇게 하면 간호사도 웃고, 덜 아프기도 했어요.” 

어떤 체험

항암과 방사선 치료가 끝났을 때 수술은 한 달 뒤로 잡혔다. 곧바로 하면 장이 터져서 안 된다고 했다. 병원에서 나온 뒤 잘 걷지도 못하는 몸으로 홍서영 씨가 향한 곳은 전남 순천에 있는 백운쉼터였다.

‘한 달 동안 몸조리를 잘해서 수술을 잘 받자.’ 그 생각만 하면서 요양원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날마다 철저한 자연식을 했고, 날마다 좋은 공기를 마시면서 걸었다. 하루에 50m도 걷고 80m도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냈을 때 그녀는 깜짝 놀랐다. 

“항암과 방사선치료 때문인지 자궁에서 이상한 분비물이 계속 나오면서 몇 달째 멈추지 않았어요. 산부인과에 물어봐도 이유를 몰랐어요. 그런데 쉼터에서 지낸 지 일주일 만에 더 이상 분비물이 나오지 않았던 거예요.” 

그것만으로도 살 것 같았다. 더 이상 짓무르고 벗겨진 엉덩이에 생리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뛸 듯이 기뻤다. 

단식을 결심한 것도 그래서였다. ‘안 먹으면 암세포가 더 커져서 더 나빠지면 어쩌나?’ 두려움도 있었지만 수술 일정도 미루고 단식을 감행했다. 남편도 함께였다. 그래주는 남편이 고마웠다. 단식을 하면서도 한 가지 생각만 했다고 한다. ‘제발 암세포 크기가 줄어들어서 항문을 살리는 수술만 하게 해달라.’고. 

수술 거부, 왜?

2011년 5월, 단식을 끝내고 다시금 병원을 찾았던 홍서영 씨는 ‘수술’ 날짜도 어긴 사람’으로 호된 질책을 받으며 수술 전 마지막 내시경을 찍었다. 

“수면마취도 안 하고 대장내시경을 했는데 담당의사가 모니터를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거예요. 무슨 일인가 싶어 저도 고개를 빼고 모니터를 봤는데 암이 있던 자리에 암이 없었어요.” 

심장이 뛰었다. 그런 그녀에게 담당의사는 “많이 좋아진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물었다. “많이 좋아졌는데 수술 안 하면 안 되냐?”고. 내시경 담당의사는 대답을 안 했다. 

그 후의 일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암이 안 보이는 데 수술을 해야 할까?’ 그래서 담당의사에게 매달렸다. “한 달만 지켜보고 수술하면 안 되겠냐?”고.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그렇게 못 믿겠으면 MRI를 찍어보자고 하더군요.” MRI 검사 결과는 N1으로 나왔다. 의사는 “N1은 임파선 전이가 있다는 뜻”이라며 “눈에 안 보인다고 암세포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래서 수술은 꼭 해야 한다는 거였다. 

하지만 홍서영 씨 생각은 달랐다. N1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결심했다고 한다. “N1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장암, 직장암 관련 책은 모조리 사서 읽으면서 NI은 임파선 전이가 4개 이하를 나타낸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결심했어요. 수술 일정을 미루자.” 

처음의 그녀 상태는 분명히 N2였다. ‘그랬던 것이 N1으로 변했다.’ 홍서영 씨는 “N1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지금처럼 하면 어쩌면?’ 다들 위험한 선택이라고 했지만 그녀는 끝끝내 수술실로 들어가지 않았다.

▲ 홍서영 씨는 함께 단식도 하고 함께 운동도 하며 헌신적으로 보살펴 준 남편 최홍림 씨에게 고맙다고 말한다.

수술 대신 했던 것들

수술을 미루고 홍서영 씨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냉장고를 새롭게 채워 넣는 일이었다고 한다. 소금부터 간장까지 먹는 것 하나하나를 새롭게 채워 넣기 시작했다. 친환경 유기농 식자재로 냉장고부터 채웠다. 그리고 목숨 걸고 실천하기 시작한 것은 다음과 같다. 

1. 아침에 일어나면 사과 + 당근주스를 한 잔 마셨다. 

2. 전날 불려놓은 콩을 삶아서 갈아서 만든 콩물을 꼭 마셨다. 

※ 오전에는 이 두 가지만 먹었다. 

3. 집근처 청량산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올랐다. 남편과 함께여서 지루하지 않았다. 

4. 하루 두 끼 주식은 오곡밥을 최대한 천천히 먹었다. 현미, 현미찹쌀, 율무, 기장, 콩을 기본으로 하되 때로 변화를 줬다.

5.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유기농매장에 들러 야채와 과일을 구입했다. 하루 일과처럼했다. 

6. 육류는 멀리하고 채식 위주로 먹었다. 저염된장을 만들어 쌈채소로 먹었다.

7. 발목펌프, 온열찜질, 냉온욕 등 자연요법으로 알려진 방법들도 꾸준히 실천했다.

8. 웃기는 비디오 보기, 웃기는 영화 보기 등 우울한 생각 대신 박수 치면서 늘 웃으려고 노력했다. 웃음이 안 나와도 억지로라도 웃었다. 우리 뇌는 가짜로 웃어도 진짜인 줄 알고 좋은 호르몬을 펑펑 쏟아낸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홍서영 씨는 “자극적인 것, 인공적인 것은 철저히 멀리하고 자연의 순환 원리에 맞춘 생활을 하려고 노력했다.”며 “그것은 암 관련 책들을 모조리 읽으면서 하나하나 깨우친 방법들이었다.”고 말한다. 

그것이 주효했던 걸까? 그로부터 5개월 뒤 가까운 병원에 가서 몸 상태를 체크했던 그녀는 깜짝 놀랐다. 암세포가 없어졌다고 했다. 임파선 전이도 없다고 했다. 2010년 12월, 직장암 진단을 받았던 홍서영 씨는 2011년 9월 기적의 주인공이 됐다. 암세포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2016년 10월 현재, 홍서영 씨는…

2016년 10월 어느 날, 전남 순천의 요양원에서 암 환자들에게 자신의 체험담을 들려주고 있는 홍서영 씨를 만났다. 2015년 12월, 5년 완치 판정까지 받자 그녀의 경험담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만든 자리라고 했다. 

올해 48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생기 있고, 건강미 넘쳤다. 다들 부러워하자 홍서영 씨는 “암으로 인해 건강하게 사는 법을 배워서 그렇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녀에게 암은 전화위복이 됐다고 말한다. 새로운 행복도 찾아주었다고 말한다. 암으로 인해 더 건강해졌고, 암으로 인해 더 사랑하게 됐고, 암으로 인해 세상과 화합도 하게 됐다고 말한다. 

분리수거? 예전에는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자연을 살리기 위해 그녀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살려준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분리수거부터 하는 사람이 됐다. 플라스틱을 안 쓰는 사람이 됐고, 1회용 종이컵 대신 머그잔을 애용하는 사람이 됐다. 

그래서일까? 지금 이 시간 생사의 기로에서 힘들어할 암 환자들에게 전하는 당부도 그 연장선이다. “어떤 시련이든지 그것만 보면 힘들지만 이기고 보면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암은 결코 죽음이 아니다. 암의 등식은 나를 돌아보고 재정비해서 제대로 가라는 신호로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그래도 하루하루가 두렵고, 죽음이 무서우면 자신이 했던 방법을 한 번 따라해 보라고 말한다. 

“가볍게 넘고 일어서리라.” “수술이 필요 없는 기적” 홍서영 씨는 “암 진단을 받았을 때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두려울 때마다 노트에 썼던 문장”이라며 “이 두 문장을 쓰면서 두려움을 이겨냈다.”고 말한다. 

허미숙 기자  kunkang198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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