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나눔터]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으로 절망했던 김소민 작가의 희망 투병기

【건강다이제스트 | 김소민(브런치 작가)】

저는 하루하루를 즐겁고 열심히 살아가던 이십대 후반 청년이었습니다. 평범한 일상을 이어가던 중 2018년 여름 대상포진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가서 바로 대상포진 치료를 시작했지만 포진이 터진 부위로 감염이 되면서 상황이 악화되었습니다.

며칠 동안 아무리 치료해도 증상이 악화되자 결국 대학병원 감염내과에서 입원 치료를 하게 됐습니다. 입원해서 집중 치료를 받자 비로소 정상 수치로 회복돼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대상포진 치료는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 당시 여름철이라 아주 얇은 이불을 덮고 자던 중 자다가 오른발에 이불이 살짝 닿았는데 ‘악’ 소리를 지를 만큼 심한 통증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통증은 날이 갈수록 점점 심해져갔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발에 전기가 통하듯이 강한 통증이 찾아왔습니다. 대상포진 때와는 통증 양상과 세기가 확연히 달랐습니다. 결국 대학병원 마취통증의학과를 찾게 되었습니다.

마취통증의학과 진료 첫날, 저는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잊을 수 없는 말을 들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환자분,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 포기하지 마시고 꼭 끝까지 열심히 치료받으셔야 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많이 의아했습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짐작조차 못했습니다.

의아해 하는 제게 의사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은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일 수도 있다.”면서 담당의를 CRPS 전문 교수님으로 변경해 주셨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저는 CRPS를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름도 너무 길어 입에 잘 붙지도 않았습니다. 그 병이 어떤 병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병원 문을 나섰습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그 말뜻을 비로소 알게 됐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왜 그런 조언을 하셨는지 너무도 잘 알게 됐습니다.

스물아홉 한창 나이에 CRPS 진단!

담당의가 CRPS 전문 교수님으로 변경된 후 다양한 신경차단술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아팠기 때문에 무슨 치료인지 일일이 물어볼 정신조차 없었습니다.

그렇게 힘든 치료를 받으면서도 이 악물고 버텼습니다. 무서운 통증을 잡을 수만 있다면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하지만 신경차단술도 수십 회 진행하자 점차 효과가 없어졌습니다. 적극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통증은 무섭도록 악화만 돼갔습니다. 결국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 받아 복용해야만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름만 마약일 뿐 ‘이게 진통제가 맞나?’ 싶을 만큼 강한 마약성 진통제를 종류별로 먹어도 통증은 전혀 잡히지가 않았습니다. 이런 제 몸이 점차 무서워지기까지 했습니다.

여러 가지 검사 끝에 결국 저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 1형을 확진 받게 되었습니다. 2019년 3월, 나이 스물아홉 살에 CRPS 환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CRPS는 신경계 질환으로 극심한 통증이 만성적으로 나타나는 질병입니다. 사람이 느낄 수 있는 통증 지수를 0~10점으로 나눌 경우, 출산의 고통을 7점이라 하는데 CRPS는 9~10점을 느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손발을 자를 때보다 더 심한 수치의 통증입니다. 이로 인해 CRPS는 ‘저주받은 질병’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지난 5년간 CRPS 환자로 살아보니 이 표현은 맞았습니다.

통증 때문에 사람이 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통증 부위는 오른발이었는데 아주 사소한 자극조차 전부 통증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양말을 신을 수 없었고, 당연히 신발을 신을 수 없었습니다. 오른발을 이용한 모든 행위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두 발이 멀쩡하게 있음에도 걸을 수 없어 엘보 클러치, 목발, 휠체어 등을 이용해서 움직여야만 했습니다. 방에서 화장실까지 걸어가는 것도 불가능해져서 말 그대로 ‘기어서’ 가야 했습니다. 샤워할 때 닿는 물방울이 쇠구슬이 떨어지는 것처럼 아팠습니다. 샤워를 하고 나오면 제 몸은 물보다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평범한 청년이었던 저는 어느새 양말을 신고, 신발을 신고, 두 발로 걸어 다니기만 하면 세상에서 부러울 것이 없는 청년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눈을 깜박여도, 입을 움직여도 통증!

살기 위해 수많은 치료와 약물 치료를 끊임없이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통증은 하루하루 무섭게 악화돼 갔습니다. 매일 먹어야 하는 약의 개수도 점차 늘어만 갔습니다. 결국 하루에 100개가 넘는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약의 개수만큼이나 부작용도 심각해져 갔습니다. 약은 약을 불러올 만큼 생각하지도 못했던 부작용들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타났습니다. 기본적으로 구역과 구토를 달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체중은 3주 만에 7kg이 증가하였습니다. 배변, 배뇨 장애가 나타나기도 하고, 몸 안의 모든 장기가 제 기능을 멈춘 것 같았습니다.

이런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또 다른 약을 먹어야만 했습니다. 몸이 약에 절여진 것처럼 지내야 했고, 밤에 잠을 자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약에 취해 잠깐 1~2분 잠들었다가 통증에 소리를 지르며 깨어나기 일쑤였습니다. 밤이 되면 통증은 더욱더 심해졌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 건 마우스피스를 물고 버티고 또 버티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경구약으로는 통증이 조절되지 않자 주 3회씩 마약성 진통제와 향정신성 약물을 주사로 맞기도 했습니다. 주사를 맞는다고 해서 통증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주사를 맞고 나면 그날 밥 한 끼 정도는 마음 편히 식사할 수 있는 그런 수준이었습니다.

매주 수없이 주사를 맞다 보니 더 이상 잡을 혈관이 없어서 PICC(말초 삽입형 중심 정맥 카테터)를 삽입한 채 2년 정도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PICC는 혈전 발생, 감염 등의 위험성이 있었지만 주사를 맞아야 하는 저에게 남아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2년간은 매주 1회씩 케타민 주사 치료도 병행했습니다. 케타민은 목숨을 걸고 맞았던 약물입니다.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주는 마취제인데, 부작용이 정말 심각했습니다. 케타민을 맞고 나면 저의 몸은 물에 흠뻑 젖은 이불처럼 무거웠습니다. 산송장과도 같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만큼 몸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밥을 먹을 수 없어 죽만 조금씩 먹어가며 버텨야 했습니다. 수많은 부작용이 따라왔지만 케타민을 맞는 3시간 동안은 통증에서 해방되었기에 하나뿐인 목숨과 맞바꾸는 심정으로 매주 치료를 받았습니다. 실제로 치료 도중 호흡이 어려워져 위험한 상황을 겪기도 했습니다.

CRPS 환자가 겪어야 하는 또 다른 어려움은 하루에도 수회씩 찾아오는 돌발통입니다. 24시간 지속되는 통증과 별개로, 어떠한 자극에 의해 또는 아무 이유 없이 돌발적으로 통증이 솟구칩니다.

돌발통이 오면 다 큰 성인이 주위 시선을 고려할 여력도 없이 엉엉 울며 차라리 죽여 달라고 애원하는 것밖에 할 수 없게 됩니다. 사실 우는 행위마저 몸의 진동을 일으켜 통증이 증가되기 때문에 마음대로 울 수도 없는 잔인한 질병이 CRPS입니다. 결국 참다 참다 119를 불러 응급실에 실려 가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사람이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주치의 교수님께 통증 부위인 오른발을 잘라달라고 울며불며 사정하기도 했습니다. 교수님은 발을 잘라 통증이 없어진다면 잘라주고 싶지만, CRPS는 환상통이 생기기 때문에 잘라도 통증이 남는다며 우는 저를 달랬습니다.

더 절망적이었던 건 힘들다고 치료를 멈추면 통증 부위는 다른 부위로 전이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전이되는 속도는 하루가 무서울 만큼 아주 빠른 속도로 악화되었습니다. 저는 결국 왼쪽 허벅지를 제외한 전신에 통증이 번져 지옥보다 더 지옥 같은 삶을 연명해야 했습니다. 눈을 깜박이는 것도, 손을 움직여 약을 잡는 것도, 약을 삼키기 위해 입을 움직이는 모든 행위가 통증이 되어버렸습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기적의 주인공도…

CRPS를 확진 받을 때만 해도 저는 희망이 넘치는 청년이었습니다. 예기치 않은 질병이 찾아왔고, 그 통증이 심상치 않은 것을 느꼈지만 분명 좋아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투병 생활을 이어 나갔습니다.

하지만 이 확신은 아프기 시작한 지 불과 1년 만에 사라졌습니다. 28살 여름부터 아프기 시작하여 1년 뒤인 29살 생일, 저는 제 인생의 마지막 생일임을 확신하며 케이크 촛불을 끄며 펑펑 울었습니다.

깜깜한 터널에 갇혀 단 하나의 불빛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젊으니까 힘내라고 하는 말이 싫었습니다. 이런 통증을 가지고 남은 50년을 도저히 살 수 없었습니다. 제가 좋아지기만을 바라며 모든 것을 헌신해 주는 가족들을 보며 ‘내가 고아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CRPS 환자에게는 ‘통증 경감’이 가장 큰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그 어떤 부작용도, 심지어 목숨을 걸고서라도 치료받아야 하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CRPS 재활치료 커리큘럼이 있는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CRPS 재활을 통해 저는 통증과 함께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하나씩 배우게 되었습니다.

CRPS 재활은 크게 약물 조절과 신체적 기능 향상을 목표로 진행됩니다. 수많은 마약성 진통제와 부가적인 약물을 줄이는 과정에서 찾아오는 금단 증상은 정말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죽은 몸이라 생각하며, 모든 치료를 견디고 참아냈습니다.

그럼에도 CRPS 통증 자체가 호전되지는 않았습니다. 매일매일 어떻게 해야 완벽하게 죽을지만 고민하는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통증 때문에 기절하는 빈도도 잦아졌습니다. 저는 결국 2020년 4월 신경외과에서 척수자극기를 삽입하게 되었습니다. 수술은 복잡하고 회복의 기간도 길었지만 척수자극기를 삽입하자 계속 악화만 되던 통증이 처음으로 호전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통증이 호전되는 속도는 개미 눈곱보다 작을 만큼 아주 천천히 진행되었습니다. 여러 치료 끝에 통증이 조금 호전되었나 싶은 순간, 모든 희망을 꺼버리듯 금세 다시 악화되기도 했습니다. 이를 계속해서 반복해야만 했습니다. 악화될 때마다 두려웠지만 항상 제 곁에서 모든 것을 맞춰주며 응원해주는 가족들을 보며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엄마는 저의 간병을 위해 교사 생활을 정리하고 딸을 살리기 위해 온 힘을 다하셨습니다. 아빠는 절망에 빠져 있을 때마다 든든한 나무가 되어 편히 기댈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가족들을 위해 저는 살아야만 했습니다. 최고의 보호자가 되어준 부모님 덕분에 저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제가 CRPS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가장 심한 저주의 말을 한다면 ‘CRPS에 걸려!’입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이 끝나기 때문에 그렇게 잔인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CRPS 환자는 쉽게 죽을 수도 없고, 살아있으면서 지옥에서나 느낄 법한 형벌을 하루하루 느끼며 살아가야 합니다. 일상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숨조차 편히 쉬지 못하는 시간들을 보내야 합니다.

보통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미화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CRPS 통증으로 힘들었던 시간은 그 어떤 것으로도 미화될 수 없을 만큼 지옥보다 더 지옥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간들을 통해, 그리고 절망 가운데 빠져있던 제가 좋아진 모습을 통해 희망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지금 차마 기대하지도 못했을 만큼 많이 호전된 상태가 되었습니다. 겉으로만 보면 평범한 청년처럼 보일 만큼 아파 보이지도 않고, 그토록 꿈꾸던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것도 가능해졌습니다. 척수자극기 및 CRPS 재활 치료가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매일 약을 먹어야 하고, 몸에 기계가 있고, 꾸준히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현재진행형인 CRPS 환자이지만, 저는 아프기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확신하며 투병에 임하고 있습니다.

희귀병 환자가 겪는 어려움 중 하나는 정보도 부족하고, 연구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희망을 갖기 어렵다는 현실인 것 같습니다. 저는 CRPS 환자 중에서도 증상이 아주 심각한 편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제가 호전되고 일상생활을 다시 영위하자 담당 교수님은 “CRPS 환우들과 통증으로 힘들어하는 많은 분들에게 힘이 될 것”이라며 투병기 작성을 권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제 글을 통해 누군가에게 그날 하루라도 버틸 힘을 전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담아 매주 투병기를 적고 있습니다.

의료진들도 더 이상 해줄 게 없다며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한창 청년기에 너무도 절망적인 나날을 보내면서 말할 수 없는 참담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제 직업이 환자라 생각하고,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자 흐릿한 희망의 불빛이 보였습니다. 그 희망의 불빛을 밝고 환하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자 기적이라는 선물이 제게 주어졌습니다. 기적은 한순간에 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분명 포기하지 않고 오늘을 살아낸다면 지금 어려움 가운데 계신 모든 분들에게도 온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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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민 작가는 CRPS 환자 중에서도 증상이 아주 심각한 편에 속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이겨내 CRPS 환자들에게 희망의 메신저가 되고 있다. 자신의 투병기를 매주 브런치에 게재하는 작가로 활동 중이다.

김소민 작가 ardor1229@naver.com

#김소민 #CRPS #건강다이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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