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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희망가] 대장암 수술 후 5년…문채원 씨 호소문“맨발로 걸으세요. 무너진 건강이 회복됩니다”

【건강다이제스트 | 허미숙 기자】

2017년 12월, 대장암이라고 했다. 대장암 2기 말이라고 했다. 2018년 1월, 대장암 수술을 했다. 대장 42cm를 잘라냈다. 2018년 3월, 항암치료가 시작됐다. 6개월간 12차를 했다. 나이 61세에 대장암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초주검이 됐던 사람! 하지만 멋지게 기사회생했다. 2022년 12월, 5년 암 완치 판정도 받았다.

이제는 웃음강사로 활동하면서 날마다 ‘허허’ 웃는 삶을 살고 있다. 암으로 인해 인생의 참맛을 알게 됐다고 말하는 문채원 씨(67세)를 만나봤다.

2017년 봄부터…

갑자기 변비가 생겼다. 살도 빠졌다. 기운도 없고 어지럼증도 생겼다. 늘 다니던 병원에 갔다. 무릎관절 수술을 했던 병원이었다. 담당의사는 설사약을 처방해주었다. 살이 빠진 것은 살 빼는 약을 처방해서 그렇다고 했다.

그런 상태로 여름을 보내고 가을경 담당의사가 대장내시경을 권했다. 2018년 1월로 일정도 잡아주었다.

그런데 11월경 문제가 생겼다. 변비가 너무 심해서 도저히 견디기 힘들 정도가 됐다. 몸무게도 많이 빠져서 걱정이 됐다.

문채원 씨는 “대장내시경을 당겨서 해달라고 부탁을 했고, 2017년 12월에 대장내시경을 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 결과는 충격이었다. 암이라고 했다. 대장암 2기 말이라고 했다. 빨리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그 당시 심경을 묻는 질문에 문채원 씨는 “둔기로 한 대 얻어맞은 듯 정신이 혼미해지더라.”고 말한다.

그리고 ‘아차’ 싶었다. 2년 전 일이 불현듯 떠올랐다. 2년 전 건강검진을 했는데 변에서 혈변이 나왔다면서 재검을 받으라고 했다.

하지만 당시 무릎관절 수술을 하고 재활치료를 받고 있던 때라 재검을 못했다. 또 치질일 수도 있다고 해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2년 만에 대장암 2기 말? 문채원 씨는 “2년 동안 아무 일이 없어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 대장암 2기 말로 모습을 드러냈다.”며 “2년 동안 방치한 것이 너무나 후회스러웠다.”고 말한다.

2018년 1월, 대장암 3기 초 수술

대장암 2기 말 진단을 받고 15일 만에 수술을 했다. 그것도 우여곡절 끝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암 환자가 되어버린 것도 기가 막힌데 치료를 받는 것도 쉽지 않았다. 몇 달 기다려야 예약이 가능했다.

다행히 15일 후 수술 일정을 잡아준 병원이 있어서 예약을 했지만 하루하루 피를 말렸다. 그래서였을까? 음식을 넘길 수 없었다. 먹으면 토했다. 물을 먹어도 토했다. 배가 아파서 거동도 못했다.

문채원 씨는 “더 이상 참으면 죽을 것 같아서 예약 전날 응급실에 실려갔다.”며 “다행히 장 파열은 아니어서 곧바로 수술을 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수술 전 검사에서 대장암 3기 초로 넘어갔다는 말도 들었다.

문채원 씨는 “2018년 1월 2일, 대장암 3기 초 상태에서 수술을 했다.”며 “똑 떼어내면 된다고 해서 수술만 하면 모든 상황이 정리될 줄 알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대장을 42cm나 잘라냈다고 했다. 수술 후에는 항암치료 12차도 해야 한다고 했다. 암세포가 림프선에도 있다고 했다.

문채원 씨는 “그런 말을 들으면서 서늘한 공포가 엄습하더라.”고 말한다. ‘말로만 듣던 암 환자의 길로 들어서는구나.’ 두렵고 무섭고 암담했다.

항암치료 12차가 남긴 상흔들

대장암 수술 후 한 달 만에 시작된 항암치료는 독했다. 온몸 구석구석을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손발톱은 다 빠졌다. 치아도 흔들렸다. 목 혈관이 타서 목소리도 안 나왔다. 심장도 다쳐서 하루 종일 가슴이 콩닥거렸다.

아무 것도 먹지를 못하니 죽을 맛이었다. 먹는 대로 토해냈다. 그러다 보니 몸무게가 22kg이나 빠지면서 사람 몰골이 아니었다. 생사를 위협할 정도가 되자 담당 교수까지 걱정했다.

문채원 씨는 “그때 교수님이 해주신 말씀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토하더라도 먹어야 한다고 설득했다. 토하더라도 일부는 위에 남아 있게 된다면서 설득했다. 그 말을 듣고 울면서 먹었다. 토하더라도 먹었다. 그러다 보니 기운이 났다.

그렇게 힘든 항암치료 12차가 끝났지만 후유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고통스런 것은 심한 불면증이었다. 밤에 잠을 이루기가 힘들었다. 신경이 곤두서서 좀체 잠들지를 못했다. 신경안정제를 처방 받아 먹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기절잠을 선물해 준 것이 있었다. 문채원 씨는 “너무도 간단한 방법이어서 신기하고 또 놀라웠다.”고 말한다.

건강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은 것

항암치료가 끝났을 때 만신창이가 된 몸을 추스르기 위해 문채원 씨가 선택한 곳은 거제도였다.

거제도에 아들이 살던 집이 비어 있었다. 공기 좋은 곳에서 요양차 거제도로 향했다.

문채원 씨는 “거제도에서 요양한 1년은 항암 후유증을 이겨내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자연의 품이 치유의 산실이 됐다. 싱싱한 해산물도 회복에 도움이 됐다. 특히 맨발로 걷기 시작하면서 건강의 큰 물줄기도 바꿀 수 있었다.

문채원 씨는 “2019년 친구의 권유로 맨발로 걷기 시작했는데 놀라운 체험을 했다.”고 말한다.

▲ 문채원 씨는 맨발걷기를 하면서 건강의 큰 물줄기를 바꿀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항암 후유증으로 발이 저려서 신발 벗기도 무서워하던 그녀였다. 한여름에도 수면양말을 신고 다녔다. 그런데 맨발로 걸으라니? 처음에는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러다 ‘혹시?’ 했다. 신발을 벗고 걸어보았다.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양말을 벗고 걸어볼 결심을 했다.

문채원 씨는 “양말을 벗고 맨발로 걸었더니 온 다리에 열이 나면서 다리가 무거웠다.”며 “그래서 반신욕을 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그날 밤 기절잠을 잤다.”고 말한다.

정말 오랜만에 맛보는 단잠이었다. 암 진단 후 처음 맛보는 꿀잠이기도 했다.

문채원 씨는 “잠을 잘 자게 되면서 건강의 물줄기도 바뀌더라.”고 말한다. 신경안정제를 끊을 수 있었다. 크고 작은 항암 후유증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손발 저림이 좋아졌고, 숨가쁨도 사라졌다.

2023년 5월, 문채원 씨는?

5월 초, 문채원 씨는 많이 바빠 보였다. 요즘 근황을 묻는 질문에 “웃음강사도 하고 난타도 배우러 다니고 스마트 활용법도 배우러 다니느라 하루 일정이 빡빡하다.”고 말한다.

특히 2019년 웃음강사 자격증을 딴 후 노인대학, 복지관에 가서 웃음 강의도 하고 봉사도 하면서 하루하루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말한다. 건강은 어떨까?

문채원 씨는 “2022년 12월에 5년 암 완치 판정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동안 전이도 재발도 없이 5년 암 완치 주인공이 됐다는 것이다.

그 비결을 묻는 질문에 문채원 씨는 “호박 같이 둥근 세상 둥글둥글 사는 법을 깨우친 덕분일 것”이라고 말한다.

첫째, 욕심을 내려놓았다. 웬만한 일은 그냥 넘긴다. 대쪽 같은 성질도 다 버렸다. 불같은 성질도 다 버렸다. 물이 넘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넘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문채원 씨는 “어차피 흘러가는 인생, 흘러가는 대로 살면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둘째, 먹는 것은 가려서 먹었다. 좋아하던 숯불구이 대신 삶아서 먹었다. 채식 위주로 먹고 가공식품, 인스턴트식품은 안 먹었다. 날고기는 물론 찬물도 안 마셨다. 문채원 씨는 “제철에 난 제철채소 위주로 먹되, 삶아서 먹고 데쳐서 먹었다.”고 말한다.

셋째, 날마다 운동을 했다. 특히 맨발걷기를 빼놓지 않고 했다. 날마다 집주변의 흙길을 걸었다. 1시간 정도는 꼭 맨발걷기를 했다.

외출 시에도 20~30분 거리는 차를 타지 않고 걸어 다녔다. 전철을 타더라도 앉지 않고 서서 갔다. 소파에 앉아서도 수시로 다리 들기를 했다. 발가락으로 가위바위보도 했다. 근육을 키우기 위해 짬짬이 근육 운동을 늘 생활화했다.

넷째, 하루하루 즐겁게 살기 위해 노력했다. 웃음강사 자격증을 딴 것도 그래서였다. 남은 인생은 ‘허허’ 웃으며 살고 싶었다. 웃음 강의를 하고 봉사를 하면서 오히려 더 큰 기쁨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 문채원 씨는 노인대학, 복지관에 가서 웃음강의도 하고 봉사도 하면서 많은 사람에게 웃음과 희망을 선사하고 있다.

오늘도 어디든 부르는 곳이면 달려가 웃음 강의를 하고 봉사도 마다하지 않는 문채원 씨!

그런 그녀가 소망하는 것은 하나다. 죽는 날까지 두 발로 걸어 다니며 살고 싶다는 것이다. 맨발걷기가 그 꿈을 이뤄줄 거라 믿고 있기에 오늘도 그녀는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고 맨발로 흙길을 걷는다.

허미숙 기자  kunkang198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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