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초대석] 한국형 응급의료체계 구축에 헌신! 정읍아산병원 임경수 병원장

【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사진 | 정읍아산병원 제공】

처참했다. 1980년대에는 교통사고가 나서 크게 다치면 대부분 사고 현장이나 이송하는 과정에서 생을 마감했다. 응급실에 도착해도 절반 이상이 사망했고, 수술실에 도착하는 외상 환자는 극히 일부였다.

당시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前원주기독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던 정읍아산병원 임경수 병원장이 응급의료체계를 구축하는 데 앞장서고 응급의학 전문의 제도를 신설하게 된 이유다. 이후에도 임경수 병원장은 제대로 총대를 멨다. 응급의료 전산화를 개발하고, 응급의학과의 전문화도 이끌었다. 다양한 응급의학 분야 책을 발간하고, 일반인이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체계도 확립했다.

국내 응급의학계 거목 임경수 병원장에게 응급의료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들어봤다.

Q. 국내 응급의학의 발전에 수많은 업적을 남긴 응급의학의 선구자로 불리십니다. 응급의학을 처음 시작했을 당시 우리나라 응급실 상황은 어땠나요?

임경수 병원장: 1986년 외과 전문의를 취득한 후 응급실에서 근무했는데 그때 응급 상황 발생부터 의료기관까지의 응급의료체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했습니다. 당시에는 연간 교통사고로 1.4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중증 환자의 대부분은 현장이나 이송하는 과정에서 사망했습니다. 힘들게 병원에 도착해도 경험이 가장 적은 인턴 의사가 근무하는 응급실에서 절반 이상이 사망했고, 수술을 받는 환자는 극히 일부인 사실을 직접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응급환자들이 목숨을 잃지 않도록 응급의료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했습니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을 만드는 데 참여하고 응급의학 전문의 제도를 신설하는 일에 매달린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Q.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할 당시 처음 시도했던 응급의료 전산화는 다른 응급의료센터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응급의료 전산화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임경수 병원장: 1996년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에서 일하던 때였습니다. 인턴 의사, 전공의, 간호사들이 번갈아가며 응급기록지를 작성하는데 응급기록지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 자주 발생했습니다. 전공의가 당직방에서 의무기록을 작성하거나, 환자가 기록지와 함께 검사실로 이동하거나, 누군가 기록지를 잘못 꽂아 놓으면 못 찾게 됩니다. 이렇게 기록지를 못 찾으면 응급 진료, 투약, 검사 등이 지연될 수밖에 없습니다.

말 그대로 시간이 곧 생명인 응급실에서 직원들이 의무기록지를 찾지 않고 의료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전산화가 시급하다고 판단했고 빠르게 정착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당시 의료기관에서는 전산화 작업이 외래진료→입원실→응급실 순으로 개발되었지만 서울아산병원의 경우는 응급실→입원실→외래진료 순으로 개발되었습니다.

Q. 오래전부터 의료인뿐 아니라 모든 국민이 심폐소생술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심폐소생술 교육 체계를 구축하셨습니다. 심폐소생술을 배우는 게 왜 중요한가요?

임경수 병원장: 1989년 연세대학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에 응급의학교실을 만들었고 1991년에는 의과대학 2년 후배인 황성오 심장내과 전문의를 교수로 초빙했습니다. 황성오 교수가 심폐소생술에 지대한 관심을 두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황금시간(golden time)의 중요성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심폐정지 환자의 생존율은 응급 상황이 발생하고 초기 4분 이내의 현장 처치가 가장 중요하고 의술만으로는 심정지 환자를 살릴 수 없습니다. 환자가 발생한 현장부터 심폐소생술이 시행되어야만 환자가 생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국민과 공유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황성오 교수를 비롯해 많은 관련자의 참여로 대한심폐소생협회를 발족하고 심폐소생술의 보급에 전력을 다했습니다.

심폐소생술은 크게 4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1. 깨우고(흔들어 깨우기)

2. 알리고(아무 반응이 없으면 119에 신고하기)

3. 누르고(가슴 한가운데를 강하고 바르게 누르기)

4. 사용합니다(자동제세동기가 있으면 사용하기)

나와 가족과 이웃의 생명을 위하여 모든 국민이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는다면 우리들은 이미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 임경수 병원장은 국내 응급의학을 발전시킨 인물로 한국형 응급의료체계를 구축하는 데 앞장섰다.

Q. 심폐소생술 외에도 일반인이 알고 있으면 도움이 되는 응급처치법을 소개해 주셨으면 합니다.

임경수 병원장: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모든 어린이가 초등학교 2~3학년 때 생존수영을 배우는 것입니다. 물에 빠져도 3~5분 동안 당황하지 않고 수면에 떠 있는 것이 생존수영입니다. 생존수영은 어린이를 포함해 모든 국민이 20분 이내에 배울 수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므로 연령과 관계없이 꼭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지혈 방법, 부목 방법(수건, 나뭇가지 등을 이용), 화재 시 대피 방법, 외상환자 현장 처치법 등 응급처치법을 숙지해 119구급대원이 올 때까지 실행하고 있으면 생존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한 산행이나 외지 여행을 할 때는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방풍 점퍼, 비상식량, 호루라기, 비상전등 등을 가져가야 합니다.

Q. 응급의학 관련 책을 많이 내셨는데 그중에는 일반인을 위한 독초 책도 여러 권이 있습니다. 실제로 독초를 먹고 응급실에 오는 경우가 많나요?

임경수 병원장: 네, 응급실에서 일하면서 독초를 먹을 수 있는 나물이나 약초로 오인해 탈이 난 사람을 자주 봤습니다. 독초를 먹은 사람을 치료하려면 먼저 독초에 대해 알아야 하는데 독초에 대한 정보와 서적이 전무했습니다. 외국 서적을 참고할 수도 없었습니다. 미국과 유럽에서 자라는 독초와 국내에서 흔히 보는 독초는 식물종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2004년에 생물학을 전공했던 김원학 의학전문기자를 만나면서 직접 국내의 식물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10년 동안 전국의 산, 들, 해안을 거닐면서 독초 사진을 찍고 환자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독초에 대한 전문 서적을 발간했으며 지금도 매주 산과 들로 다니면서 자연을 접하며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먹을 수 있다고 오인하는 대표적인 독초 3가지를 꼽자면 동의나물, 여로, 박새가 있습니다. 각각의 특징을 기억해서 섭취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첫 번째, 독초인 ‘동의나물’을 ‘곰취’인 줄 알고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동의나물은 향이 없고, 잎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는 반면 곰취는 향이 좋으면서 잎이 부드럽고 광택이 없으며, 날카로운 톱니가 있습니다.

두 번째, 독초인 ‘여로’는 산나물로 먹는 ‘원추리’와 혼동하기 쉽습니다. 여로는 잎에 털과 깊은 주름이 있지만 원추리는 잎에 털과 주름이 없습니다.

세 번째, 독초인 ‘박새’는 주로 명이나물로 불리는 ‘산마늘’과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박새는 여러 장의 잎이 촘촘히 어긋나 있으며 주름이 뚜렷하지만 산마늘은 마늘(부추) 향이 짙게 나고 줄기 하나에 2~3장의 잎이 달려 있습니다.

응급의료는 소방, 경찰과 함께 사회안전망(social safety)의 3대 필수 요소이며 모든 국민이 혜택을 봐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특히 지방의 의료기관에서는 소아응급, 분만, 외과 수술 등의 필수 의료가 충분히 제공되지 못하고 있다.

임경수 병원장은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최대한 지역의 의료기관이 대처할 수 있도록 공중보건의 제도와 민간 의료기관의 혼합형 운영체계를 고려해야 할 상황이라고 본다.

임경수 병원장은 의료취약지역 문제에도 관심이 크다. 최근에는 정읍아산병원이 위치한 정읍시의 의료취약지역에 사는 고령자에게 최소한의 국가건진이라도 제공하려고 준비 중이다.

‘우리 사회의 가장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 아산재단의 설립 취지인 이 말은 임경수 병원장의 신념이기도 하다. 도로가 좋아지고 병원은 많아졌지만 여전히 적절한 응급의료나 최소한의 의료 혜택도 못 받는 사람이 많다. 임경수 병원장은 국가, 지자체가 할 수 없다면 지역의 병원이 조금이라도 의료 양극화를 메우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임경수 병원장 취임 후 정읍아산병원은 병원 수익보다는 지역 사회를 위해 앞장서고 질병으로 소외받는 이웃에게 다가가기 위해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정유경 기자 kunkang198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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