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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희망가] 전립선암 3기말 수술 후 8년 채희관 씨 "전립선암도 국가검진 필수항목으로"2021년 11월호 74p

【건강다이제스트 | 허미숙 기자】

많이 망설였다고 한다. 지금도 쉬쉬 숨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진도 옆모습이다. 온전히 다 드러내기에는 아직 용기가 없다.

전립선암 3기말 진단을 받은 지 어느덧 8년! 생사의 기로에서 수술도 했고, 방사선 치료도 했고, 호르몬 치료도 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그 후유증은 말로 다 못 한다. 요실금 패드를 착용해야 한다. 남성 기능도 잃었다. 그 굴욕감, 그 상실감을 누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있을까?

그런 처지에 인터뷰? 결코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는 용기를 내야 하기에 인터뷰에 응했다는 사람! 전립선암 3기말을 어렵게 이겨내고 전립선암 환우들의 희망지기로 살고 있는 채희관 씨다.

그런 그가 목청 높여 외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한다. 국가건강검진에 전립선암 검사도 꼭 포함시켜 달라는 것이다. 유방암, 자궁암은 되는데 왜 전립선암은 안 되는지 묻고 싶다. 국가건강검진에 전립선암 검사를 필수항목으로 추가하면 수많은 남성들의 피맺힌 절규를 미연에 막을 수 있다고 말하는 채희관 씨를 만나봤다.

2013년 6월에… 전립선암

43년간의 긴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소화가 잘 안 돼 동네 내과에서 건강검진을 했다. 위내시경도 하고 대장내시경도 했다. 다리도 가끔 저리고 따끔거린다고 했더니 신경외과 진료를 추천했다.

2007년 12월 말, 채희관 씨가 동네 신경외과에 갔던 이유다. 그런데 신경외과 전문의가 이상한 말을 했다. 전립선 특이항원인 PSA 수치가 적정수치 4.0보다 월등히 높은 9.21로 나왔다면서 빨리 종합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PSA 수치가 4.0 이상일 때는 전립선암의 발생 여부를 알아봐야 한다는 거였다.

그래서 가게 된 OO대학병원 비뇨기과 검사 결과에서도 PSA 수치는 10.98로 높게 나왔다. 담당의사는 전립선암일 수도 있으니 조직검사를 하자고 했다.

2008년 2월 13일, 힘들게 한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다. 담당의사는 “정황상 암이라고 생각했지만 8개소 조직검사 결과 암은 아니라고 판단했다.”며 “처방한 약을 먹으면서 1년 후 다시 PSA 수치를 검사하자.”고 했다.

채희관 씨는 “암이 아니라는 말에 콧노래까지 불렀다.”고 기억한다. 그래서 퇴직 후 생활도 신나게 즐겼다. 여행도 가고 친구들과 술잔도 기울이면서. 그렇게 1년이 흘렀다.

2009년 2월 27일, 1년 만에 PSA 수치는 11.56으로 상승돼 있었다. 그래도 담당의사는 4개월 후 다시 검사해서 판단하자고 했다. ‘좀 높아도 괜찮은가 보다.’ 했다.

2009년 6월 26일, 4개월 만에 PSA 수치는 12.14로 더 높게 나왔다. 담당의사는 그제야 조직검사를 하자고 했다. 하지만 내키지 않았다. 첫 번째 조직검사를 하면서 너무도 힘들었던 기억이 망설이게 했다. 또 전립선암은 천천히 진행된다는 말도 들어서였다.

채희관 씨는 “그 후 1년 동안 검사도 안 하다가 2010년 6월부터 동네 내과에서 PSA 검사를 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암 전문가라면서 너무 걱정하지 말고 정기적으로 PSA 수치를 보면서 대처하면 된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 채희관 씨는 갖은 고생 끝에 전립선암 3기말을 극복하고 지금은 전립선암 환우들의 멘토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돌이킬 수 없는 화근이 될 줄이야! 채희관 씨는 “2010년 6월부터 동네 내과에서 6개월마다 PSA 수치를 체크하면서 관리했는데 2013년 4월 PSA 수치가 13.84까지 되면서 소변까지 찔끔거리게 됐다.”고 말한다.

겁이 났다. 다급한 마음에 국내 최고라고 하는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2013년 5월 27일, 서울대병원에서 12개소 조직검사를 시행했다. 2013년 6월 4일, 그 결과가 나왔다. 담당의사의 첫 마디는 잊을 수가 없다.

“조직검사 결과 암입니다.”라고 했다.

“12개소 중 5개소에 암이 있으니 뼈스캔, CT, MRI 등을 해보고 치료방향을 결정하자.”고 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심장 박동은 일순간 멈추고, 다리 힘도 풀리면서 풀썩 주저앉았다. 너무도 후회스러웠다.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생사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 상황이 믿기지도 않았다.

채희관 씨는 “PSA 수치가 높은 데도 수수방관하면서 스스로 병을 키웠다는 생각에 뼈저린 후회를 했다.”며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원통하고 분한 마음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2013년 7월에… 로봇수술

갑자기 전립선암 진단을 받자 무섭고 두려웠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갈피를 잡을 수도 없었다. 다행히 뼈스캔 결과 전이는 안 됐다고 했다. 여러 정황상 방사선 치료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선뜻 결정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막막하고 혼란스러웠다.

그때 한 줄기 구원의 빛처럼 다가왔던 것! 채희관 씨는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전립선암환우사랑방’이라는 카페를 알게 됐는데 치료 방향을 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전립선암 선배 환우들로부터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 동병상련의 따뜻한 조언도 들을 수 있어서 힘이 됐다.

채희관 씨는 “서너 군데 병원을 더 다녀보고 최종 치료 플랜을 짰다.”며 “2013년 7월 2일 신촌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로봇수술을 하게 됐다.”고 말한다.

수술은 잘 됐다고 했다. 정확한 결과는 10일 후에 나왔다. 담당의사는 “림프선 전이는 없고, 정낭 침윤 등 3기말에 해당하지만 PSA 수치는 1.79로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수술 후 맞닥뜨린 현실은 참담하고 비참했다. 요실금 패드 없이는 하루도 지낼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불편하고 수치스러웠다.

게다가 하루하루 PSA 수치에 울고 웃는 살얼음판 인생이 되고 말았다. PSA 수치가 0.01 이하로 떨어지지 않으면 암 잔존의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들어서였다.

설상가상 수술 후 3개월이 지나도 PSA 수치는 0.04로 나왔다. 불안했다. 수술 후 7개월째에는 PSA 수치가 0.12로 치솟으며 아연실색케 했다. 담당의사도 “PET-CT상 아무 이상은 없으나 PSA 수치가 많이 상승했다.”며 걱정할 정도였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수술로 완치를 기대했던 희망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채희관 씨는 “결국 호르몬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2014년 2월부터 호르몬 치료를 시작했다. 2014년 3월부터 방사선 치료도 시작했다. 2014년 5월, 호르몬 치료와 총 24회의 방사선 치료가 끝나자 비로소 PSA 수치가 0.01 이하로 떨어졌다. 그제야 담당의사는 “80세 이상 보장하겠다.”는 덕담도 했다.

그 덕담이 주효했던 걸까? 채희관 씨는 “그때부터 PSA 수치가 0.01 이하로 유지되면서 생사의 위기 국면에서도 어느 정도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로부터 적잖은 세월이 흘렀다. 전립선암 수술을 한 지도 8년째인 2021년 9월 현재, 채희관 씨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 채희관 씨는 자신의 전립선암 투병기를 생생하게 기록한 <횡설수설 투병기>를 펴내 전립선암 환우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전립선암 환우들의 멘토로 활약 중!

2021년 9월 초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채희관 씨는 책 한 권을 선물했다. 서점에서 판매하는 책은 아니라고 했다. <횡설수설 투병기>라는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자신의 전립선암 투병기를 기록한 책이라고 했다. 전립선암 환우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손수 제작해서 나눠주고 있다고 했다.

그런 그의 모습은 활기차고 즐거워 보여서 좋았다. 일흔이 넘었다고 했지만 꽃중년 모습이어서 놀라웠다. 건강은 괜찮을까?

채희관 씨는 “1년에 한 번씩 오라는 걸 6개월에 한 번씩 가서 PSA 수치를 체크한다.”며 “PSA 수치가 0.01 이하로 관리되고 있어 만족스럽다.”고 말한다.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었던 걸까?

채희관 씨는 “별 것 없다.”면서도 “몇 가지 원칙은 꼭 지켰다.”고 말한다.

첫째,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 전립선암 환우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발족한 (사)전립선암환우건강증진협회 봉사자로 적극 나서서 진료 시 동행하는 진료 동행 봉사도 하고 전화상담 봉사도 했다. 코로나 때문에 잠시 주춤하지만 주 2~3회 꼭 진료 동행 봉사를 했다고 한다.

불안하고 초조한 환우에게 진료 동행 봉사가 큰 힘이 되고 의지가 된다는 걸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방사선 치료를 앞두고 진료실 앞에서 불안에 떨던 때 진료 동행 봉사자를 보고 느꼈던 안도감은 지금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치료가 끝나자마자 진료 동행 봉사를 시작했다는 그다. 받은 은혜의 일부라도 보답하고 싶어서 시작했다고 한다.

채희관 씨는 “봉사 후에 느끼는 행복감은 면역력 강화라는 최고의 선물로 되돌려 주더라.”고 말한다.

둘째, 마음을 비우고자 노력했다. 모든 욕심을 내려놓았다. 오래 살고 싶은 욕심까지도 내려놓았다. 전립선암 환우들은 PSA 수치가 조금이라도 올라가면 ‘혹시 재발일까?’ 스트레스부터 받는다. 검사할 때마다 피 말리는 시간을 맞이한다.

그런 스트레스가 독이 된다는 걸 알았다. 욕심을 버리면 그런 스트레스도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고 믿었다.

채희관 씨는 “20년 살고자 욕심을 부렸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며 “5년만 즐겁게 살자고 마음을 비운 것이 오늘을 있게 한 것 같다.”고 말한다.

셋째, 식생활의 대원칙은 ‘과유불급’을 실천했다. 채식 위주로 먹어보기도 하고, 붉은 고기는 일절 안 먹기도 실천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과유불급’이라는 거였다. 골고루 먹되 좋지 않은 음식은 많이 먹지 않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채희관 씨는 “식생활의 대원칙은 균형 잡힌 영양식을 실천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말한다. 다만 인스턴트음식, 튀김류, 붉은 육류는 줄이고, 다양한 채소와 과일, 통곡물 위주로 섭취하면서 술, 담배, 탄고기, 짠음식 등은 피하는 식이었다.

단, 아침 식단은 해독주스를 꼭 마셨다. 토마토+양배추+당근+브로콜리+사과+바나나+블루베리 등을 삶거나 생으로 넣어 갈아서 주식으로 먹었다. 지금도 아침 식사는 해독주스로 대신한다.

넷째, 면역력 관리를 위해 날마다 운동했다. 일주일에 3회 이상은 동네 뒷산 오르기를 하고, 주말에는 여행 겸 산행을 했다. 버스 안 타고 걷기, 비가 올 때는 헬스장에서 걷기운동과 근육운동을 하면서 목표량을 채웠다.

채희관 씨는 “땀이 조금 날 정도의 걷기 운동은 최고의 면역 증강제라는 생각을 하면서 하루 1만 5천보 정도는 꼭 걸었다.”고 말한다.

다섯째, 하루도 빠짐없이 반신욕이나 족욕을 했다. 수술, 방사선, 호르몬 치료의 후유증 때문인지 손발이 차고 저리고 시린 증상이 심했다. 체온을 올리기 위해 날마다 20~30분 정도 반신욕이나 족욕을 했다.

채희관 씨는 “비록 PSA 수치가 정상이어도 늘 재발의 두려움을 안고 사는 것이 전립선암 환우들의 숙명”이라며 “그런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봉사도 하고 마음도 비우고 운동도 열심히 하면서 최대한 즐겁고 재미있게 살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한다.

그런 그가 긴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전 국민께 꼭 호소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한다. 국가건강검진에 전립선암도 필수 항목으로 추가해 달라는 것이다. 유방암, 자궁암은 국가에서 시행하는 무료 건강검진으로 조기 진단, 조기 치료가 가능하다. 그런데 전립선암은 해주지 않고 있다. 건강검진에 PSA 검사만 넣어주면 되는데 그걸 안 해주고 있다.

PSA 검사만 하면 전립선암도 얼마든지 일찍 발견할 수 있다. 전립선암은 일찍 발견하면 완치율도 높다.

채희관 씨는 “국가건강검진에 간단한 PSA 검사 항목이 없어 수많은 남성들이 피눈물을 흘린다.”며 “전립선암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할 수 있도록 정책적 배려가 꼭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권익위에 청원도 하고 보건복지부도 찾아다니며 두 팔 걷어붙이고 열심인 채희관 씨! 그의 호소문이 부디 전립선암 치료에도 새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허미숙 기자  kunkang198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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