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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일까? VS 구세주일까? 딴 주머니를 둘러싼 부부들의 이중 심리

【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도움말 |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 김숙기 원장】

‘돈 문제’는 익숙한 이혼 사유다. 돈 때문에 결혼하지 않았어도 돈 때문에 이혼은 한다. 부부 사이 돈 문제 중에서 이중심리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있다. 배우자의 딴 주머니다. 대부분 남편과 아내에게 배우자의 딴 주머니는 역대급 배신감을 안겨준다.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구세주가 되며, 오히려 배우자가 딴 주머니를 안 찬 것을 서운해 하는 사람도 있다. 딴 주머니를 둘러싼 부부의 이중 심리를 알아본다.

딴 주머니 찼다가 따로 살게 된 부부 이야기

기가 막혔다. 주부 박주선(가명, 45세) 씨는 남편의 텅 빈 딴 주머니 앞에서 망연자실했다.

차라리 드라마 장면처럼 책장 속이나 액자 뒤에 숨긴 돈을 봤으면 피식 웃고 말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아는 체 안 하고 얼마나 모았는지 간간이 훔쳐보는 재미도 쏠쏠했을 것이다.

며칠 전 박 씨는 시동생으로부터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형수님 정말 고맙습니다. 꼭 빨리 갚겠습니다.”라는 문자였다.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남편에게 물었다. 남편은 동생이 카드 값이 급하다고 해서 30만 원을 빌려줬다고 했다. 빠듯한 용돈을 타서 쓰는 남편이라 큰돈이 있을 리는 없지만 이상했다. 30만 원에 그런 문자 메시지를 보낼 시동생이 아니었다.

그날 밤 남편이 잠들자 휴대폰을 몰래 봤다. 은행에서 온 문자 메시지를 보니 남편은 30만 원이 아니라 500만 원을 시동생에게 부쳐줬다. 깜짝 놀라서 자는 남편을 깨워 따져 물었다. 카드 현금 서비스를 받거나 마이너스 통장이라도 만든 줄 알았다.

남편은 원하는 대답은 하지 않고 휴대폰을 봤다고 화를 냈다. 남편의 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불같이 화를 내자 남편은 실토했다. 그 500만 원은 자기가 6년 동안 몰래 모은 돈이라고 했다. 아내가 모르는 수당을 급여 계좌와 다른 계좌로 받았다고 했다. 시동생이 하도 어렵다기에 빌려줬다고 했다.

배신감에 치가 떨렸다. 빨리 돈을 모아 집을 살 생각에 옷도 안 사 입고, 먹고 싶은 거 참아가며 살아온 박 씨였다. 그런데 남편은 박 씨 몰래 자기 형제만 도와줄 비상금을 모으고 있었다. 남편과 같은 공간에 있기 싫었다. 그날로 짐을 싸 아이와 친정으로 왔다. 매일 집으로 돌아오라고 비는 남편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딴 주머니 찼다가 사랑으로 바뀐 부부 이야기

매일같이 지지고 볶던 아내와 사이가 갑자기 좋아졌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버린 건 돈이 아니라 돈에 담긴 마음이었다.

서울에서 치킨가게를 운영하는 손장호 씨(가명, 39세)는 얼마 전 건물주로부터 월세를 올려달라는 말을 들었다. 가뜩이나 불황이라 장사도 안 되는데 나가라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진짜 나가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재작년에 거금을 들여 가게 리모델링을 했다. 그동안 단골손님도 꽤 생겼다. 배달 위주면 자리를 옮겨도 상관없는데 가게에 와서 치킨을 먹는 손님이 절반 가까이 된다.

월세를 올려달라는 날이 다가오면서 이상하게 아내와 싸우는 날이 늘었다. 직장에 다니는 아내는 밤에는 치킨가게 일을 돕는다.

그런데 아내가 퇴근하고 가게로 와서 월세를 걱정하는 소리를 하면 괜히 짜증이 나 싸움으로 번지기 일쑤였다. 아내가 TV를 보다 까르르 웃으면 “당신은 지금 웃음이 나오느냐?”고 톡 쏘아대고 이내 후회했다. 아내는 고생할 손 씨를 생각해 아이도 친정에 맡기고 일손을 돕지만 손 씨는 자신도 모르게 아내에게 화풀이했다.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때쯤 아내가 손 씨에게 통장을 하나 내밀었다. 2000만 원과 이자가 차곡차곡 쌓인 통장이었다. 아내가 결혼 전에 모은 돈이라고 했다. 손 씨가 자영업을 하니까 망할 때를 대비해 없는 셈 치고 계속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돈 걱정 때문에 상할 대로 상한 남편 얼굴을 보니 지금 그 통장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미안하고 창피했다. 화만 내는 자신을 이해하고 보듬어준 아내가 가여웠다. 한참을 고민한 손 씨는 다시 아내에게 통장을 돌려줬다. “내가 더 어려워지면 꺼내줘.”라는 말과 함께. 손 씨는 아내의 이유 있는 딴 주머니 덕에 다시 힘이 났다. 더 맛있는 치킨을 팔면 매출도 오를 거라는 생각으로 오늘도 치킨가게 문을 연다.

딴 주머니? 싫다! VS 은근히 바란다!

유행가 가사처럼 ‘내 거인 듯, 내 거 아닌 내거 같은’ 돈이 있다. 배우자의 딴 주머니 속 돈이다. 부부가 모은 돈은 공동 재산이지만 딴 주머니는 성격이 좀 다르다. 공돈이지만 보통 그 액수가 크면 클수록 배신감이 크다. 모은 기간이 길면 길수록 화가 더 치민다. 비밀을 들킨 사람도, 비밀을 알게 된 사람도 기분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 김숙기 원장은 “배우자가 딴 주머니를 차면 우선 배신감이 들 수밖에 없다.”며 “극단적인 경우는 배우자가 이혼할 준비를 한다고 생각하거나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배우자의 딴 주머니를 조금 다르게 보는 사람도 있다. 평소 배우자가 경제 개념이 없다고 여겼다면 딴 주머니로 비상금을 챙겼다는 자체만으로 흐뭇할 수도 있다.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는 ‘다른 남편처럼 우리 남편도 비자금을 숨겨 두지 않았을까?’하고 은근히 바라기도 한다.

딴 주머니 속 불안을 꿰뚫어봐야

지난 2012년에 진행된 한 결혼정보업체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혼자 10명 중 8명이 비상금을 모으고 있었다. 이렇게 너도나도 배우자 몰래 딴 주머니를 차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부분은 말 그대로 비상금이다. 비상시에 쓰기 위해서다. 사업하는 남편이 있다면 남편 사업이 잘못될 때를 위해 드러나지 않게 돈을 모으는 식이다. 직장에 다니는 남편들은 자기 월급만으로 편안하게 사는 아내를 보면 불안하다. 평생 직장에 다닐 수 없으니까 아내 모르게 돈을 따로 모으기도 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쓸 돈이 필요해서 딴 주머니를 차기도 한다. 물건을 사거나 돈을 쓰는 일로 배우자와 자주 부딪히면 괴롭다. 괜히 치사해지고, 마음이 상한다. 이런 갈등을 피하려고 몰래 돈을 모으는 것이다. 앞의 설문조사에서도 비상금 사용처는 ‘개인의 생활비로 사용한다’가 남성은 71%, 여성은 31.4%를 차지했다.

김숙기 원장은 “딴 주머니를 찬다는 것은 ‘불안감’ 또는 ‘물질 애착’과 관계되어 있다.”고 말한다. 현재 상황만을 믿을 수 없다거나 채울 수 없는 욕구에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이것은 배우자의 딴 주머니를 발견했을 때 중요한 대처 방법으로 쓰인다. 용서하느냐 안 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배우자의 심리를 살피고 그 마음을 이해하려고 애써야 한다.

김숙기 원장은 “배우자 모르게 딴 주머니를 찰 정도로 충족되지 않은 욕구를 이해하고, 서로에게 믿음을 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자기 점검도 필요하다. 돈을 쉽게 쓰거나 배우자가 쓰는 돈에 너무 인색하지 않았는지 떠올려보는 것이다.

딴 주머니=자기만의 세계

김숙기 원장은 “부부라면 모든 것을 다 공개해야 한다는 생각도 조금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배우자라고 해서 모든 일에 개입하거나 간섭해야 하는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가정 경제에 큰 지장이 없는 범위 안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꾸려가는 재미도 약간은 허용해줄 필요가 있다.

TIP. 딴 주머니 들켰을 때… 믿음 잃지 않는 법

미래를 대비하려고 몰래 딴 주머니를 찼다면 미리 편지를 써놓자. 배우자에게 딴 주머니를 들켰을 때 건네줄 편지다. 내용은 이런 식이 좋다. 

‘여보, 사실은 내가 이렇게 돈을 모으고 있어.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당신과 아이들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 모으는 거야….’라고 쓰는 식이다.

나쁜 의도가 있는 딴 주머니가 아니라는 점을 충분히 이해시키면 부부싸움으로 번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김숙기 원장은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 원장이며 가족상담 및 부부갈등 조정, 부부코칭, 가족리더십 전문가다. 숭실대학교, 인하대학교 외래교수이며, 각종 부부문제 솔루션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정유경  kunkang198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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