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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사는 법] 2년 만에 뇌경색 극복한 홍진기 씨의 기적“굳은 의지만 있으면 누구나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건강다이제스트 | 허미숙 기자】

경기도 사회적경제협의회 이사장을 했다. 경기도 사회적경제CEO협의회 회장도 했다.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회적 기업이 성공 발판을 마련하는 데 선봉장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변했다. 일도, 삶도, 꿈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건강이 발목이 잡았다. 뇌경색이 모든 것을 앗아갔다. 가까스로 목숨은 건졌지만 오른팔을 못 쓰고 오른쪽 다리도 못 썼다. 하루아침에 휠체어를 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 충격은 말로 다 못 한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했다. 분노, 좌절, 절망의 시간을 견뎌내야 했다. 그런 시련을 이겨내고 2년 만에 다시 걸을 수 있게 되면서 기적의 주인공으로 불리는 사람! 경기도 평택에서 홍진기 씨(66세)를 만나봤다.

2019년 10월 5일에…

순천만에 있는 갤러리아 카페에서 지인과 만나고 있었다. 차도 시켰다. 그런데 갑자기 오른팔이 전기에 감전된 듯 찌릿하면서 꼼짝을 안 했다. 곧이어 오른쪽 다리도 찌릿하면서 꼼짝을 안 했다.

홍진기 씨는 “마치 쌀 한 가마니를 다리 위에 올려놓은 느낌이 들면서 갑자기 꼼짝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말한다.

그 후의 일은 짐작대로다. 119 구급차를 타고 급히 병원으로 이송됐다. 30~40분 만에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신의 한수였다.

홍진기 씨는 “의식은 있었지만 말은 어눌한 상태로 병원에 실려 갔는데 도무지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순천에 있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MRI도 찍고 CT 검사도 했다. 검사 결과 말초신경이 막혔다고 했다. 그래서 수술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수원에 있는 아주대병원으로 갔다.

아주대병원에서도 같은 소견을 들었다. 중환자실에서 50시간 집중 치료도 받았다. 약물로 혈압을 올려 혈류를 돌게 해서 혈전을 빼내는 치료도 하고 경구용 약물 치료도 했다.

그렇게 10일 정도 치료했을 때 위험한 고비는 넘겼다고 했다. 퇴원하라는 말도 들었다. 다만 퇴원 후에는 꼭 재활병원에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홍진기 씨는 “2019년 10월 15일에 오른쪽 편마비로 거동도 못하고 침대차를 타고 평택에 있는 비전재활병원에 입원을 했다.”며 “재활병원에 들어서면서 느꼈던 절망감, 당혹감, 참담함은 지금도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말한다.

재활에 사활을 걸고…

불과 10일 만에 너무도 달라져 버린 삶! 현실 같지가 않았다. 갑자기 쓰러진 것도 이해가 안 됐다. 특별한 전조증상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굳이 꼽자면 쓰러지기 일주일 전쯤 걸음걸이가 조금 이상했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데 자꾸만 오른쪽으로 치우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몸이 힘들면 얼마든지 휘청할 수 있는 일이라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혈압은 조금 높아서 혈압 약은 먹었다. 그것 외에는 아무런 조짐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오른쪽 편마비로 오른팔도 못 쓰고, 오른쪽 다리도 못 쓰게 됐다. 재활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됐다.

홍진기 씨는 “이런 상황이 너무도 황당해서 재활병원에 입원해서도 한동안은 절망과 분노에 찬 나날을 보냈다.”고 말한다.

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홍진기 씨는 “의료진의 말 한 마디가 희망의 불씨를 만들어줬다.”고 말한다. “최선을 다하면 좋아질 수 있어요.” 치료사의 그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이대로 끝난 인생이 되고 싶지 않았다.

“6개월 후 지팡이를 짚을 수도 있고, 휠체어를 탈 수도 있다.”는 치료사의 말은 정신이 번쩍 들게 했다. 6개월 동안 재활운동을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에 따라 지팡이를 짚을 수도 있고, 휠체어를 탈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홍진기 씨는 “재활병원에 입원한 지 14일 만에 정신을 차리고 재활운동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6개월 후에는 꼭 지팡이를 짚겠다는 각오도 함께 다지면서. 이때 그가 죽기 살기로 실천했다는 재활운동은 다음과 같다.

첫째, 날마다 팔 돌리기 운동을 했다.

펴지지 않는 팔을 밴드로 묶어 힘들게 돌리고 또 돌렸다. 오전에 30분씩 4번, 오후에 30분씩 4번, 날마다 240분씩 팔 돌리기 운동을 했다.

홍진기 씨는 “재활운동을 시작하면서 ‘팔이 먼저예요? 다리가 먼저예요.’라고 물어보던 치료사의 말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물음에 홍진기 씨는 “당연히 팔이 먼저라는 답변을 했다.”고 한다. 다리는 휠체어도 있고 여러 가지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다리보다는 팔의 회복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치료사의 말도 “팔이 다리보다 2~3배나 늦게 회복되는 편”이라고 했다.

둘째, 간병인을 22일 만에 그만두게 했다.

간병인이 해주던 일을 직접 하기로 했다. 화장실 변기 물을 내릴 수 있게 되면서 간병인을 내보냈다.

홍진기 씨는 “이 또한 신의 한수가 되었다.”고 말한다. 간병인이 있으면 모든 걸 다해주니 움직일 이유가 없었다. 간병인을 내보내고 직접 다하게 되면서 근력도 생기고 요령도 생겼다. 다만 혼자서 할 수 없는 것 하나는 목욕이었는데 이틀에 한 번씩 아들의 도움을 받아서 해결했다.

홍진기 씨는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한 것이 뇌경색 회복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천천히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 늦을 뿐이고 힘이 들 뿐이다.

▲ 뇌경색으로 오른쪽 편마비가 됐던 홍진기 씨는 이대로 끝난 인생이 될 수 없다며 살이 찢어지는 고통을 참아내며 재활운동에 사활을 걸었다고 말한다.

셋째, 팔의 힘을 기르기 위해 각 티슈 한통을 다 뽑는 운동도 날마다 했다.

마비된 오른팔은 스치기만 해도 엄청난 통증을 동반했지만 눈물로 아픔을 참으며 팔운동을 했다. 2kg 아령도 하루에 세 번으로 나눠 360회 들어 올리는 운동을 날마다 하면서 마비된 팔의 힘을 길렀다.

이런 노력이 통했던 걸까? 홍진기 씨는 “재활병원에 입원한 지 4개월 만에 휠체어 대신 지팡이를 짚고 치료실도 갈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그 모습을 보고 여러 치료사 선생님들이 박수 치며 환영해 주던 일이 지금도 선명하다.

하지만 무리해선 안 된다고 해서 한동안 휠체어를 탔다. 지팡이를 짚고 날마다 병원 복도를 걸을 수 있게 된 것은 재활병원에 입원한 지 8개월 만의 일이었다.

그러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몸도 달라졌고, 마음도 달라졌다. 홍진기 씨는 “걸을 수 있게 되면서 병원 복도, 병원 주변, 계단 등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라면 어디라도 돌아다녔다.”고 말한다.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날마다 움직였다. 조금 좋아졌다가 한동안 정체기가 이어지는 일이 반복되면서 수없이 실망하고 낙담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집에서 먹고 자는 것밖에 못하는 인생이 되고 싶진 않았다.

홍진기 씨는 “퇴원할 때는 꼭 넥타이를 매고 병원 문을 나서겠다는 목표를 정하고 살이 찢어지는 고통도 참아내며 재활운동에 사활을 걸었다.”고 말한다.

그랬던 그는 결국 그 꿈을 이뤘다. 2021년 12월 16일 넥타이를 매고 퇴원을 했다. 두 발로 걸어서 퇴원을 했다. 하루 만보를 걸으며 다리 근육을 키운 덕분이었다.

두 손도 자유롭게 쓰면서 퇴원을 했다. 젓가락 연습용 에디슨 젓가락을 사서 날마다 연습했고, 2021년 2월 28일부터 11월 18일까지 날마다 병상일기를 쓰면서 부단히 노력한 결과이기도 했다.

재활병원에 입원한 지 2년 만에 글도 쓰고 오른손으로 젓가락질도 하고 걷기도 하면서 오른쪽 편마비를 극복했던 것이다. 병원에서도 이런 케이스는 처음 본다며 다들 놀라워했다.

홍진기 씨는 “입원 날짜는 있어도 퇴원 날짜가 없다는 재활병원에서 2년 만에 퇴원을 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것은 하나였다.”며 “포기하지 않으면 희망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거였다.”고 말한다.

2022년 12월에 만난 홍진기 씨는?

2022년 12월 중순, 경기도 평택에서 만난 홍진기 씨는 손수 운전을 해서 평택역까지 마중나와 주었다. 재활병원에서 퇴원한 지도 1년이 지났다고 했다. 그런 그는 걸음걸이도 자연스럽고 운전도 능숙하게 잘했다. 뇌경색 후유증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 비결을 묻는 질문에 홍진기 씨는 “병원에서 퇴원한 후에도 꾸준히 재활운동을 하고 있다.”며 “생활 자체가 재활운동이 되게끔 생활 속의 재활운동을 한다.”고 했다.

첫째, 날마다 운동을 한다.

• 짐볼에 앉아서 엉덩이 들어 올리며 뛰기를 하루에 40분씩 꼭꼭 한다.

• 집에 철봉을 걸어놓고 매달리기 운동을 수시로 하면서 팔 힘을 기른다.

• 날마다 6천보 걷기를 하면서 다리 근육을 기른다.

둘째, 사소한 집안일도 손수 한다.

• 빨래를 손수 한다. 처음에는 빨래를 세탁기에 넣기도 힘들었는데 지금은 세탁바구니를 들고 다닐 만큼 팔 힘이 강해졌다. 처음에는 미안해하던 아내도 이제는 당연하게 여긴다.

• 다림질도 손수 한다.

• 설거지도 손수 한다. 식기세척기를 쓰지 않고 설거지를 한다. 처음에는 그릇도 많이 깼다.

• 청소도 손수 한다. 처음에는 진공청소기를 따라다니기도 힘들었는데 이제는 들고 다니며 청소를 한다.

셋째, 음식은 다이어트식으로 먹는다.

부실한 다리를 지키려면 살을 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침은 삶은 검은콩+호두+우유+아로니아 등을 넣어서 만든 주스 한 잔과 삶은 달걀 하나만 먹는다. 점심과 저녁은 보리밥이나 현미밥으로 간단한 식사를 한다.

홍진기 씨는 “이렇게 생활하면서 해보고 싶었던 일도 하나둘 다시금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재활병원에서 퇴원하면서 가장 먼저 해보고 싶었던 일은 SRT를 타보는 거였다. 캐리어를 들고 어떻게 타나 고민이 많았다.

홍진기 씨는 “퇴원한 지 3개월 만에 SRT를 타는 데 성공했다.”고 말한다.

홍진기 씨는 “퇴원한 지 8개월 만에 비행기를 타는 데도 성공해 제주도로 2박 3일 여행도 갈 수 있었다.”고 말한다.

차를 운전해 제일 멀리갈 수 있는 거리는 어디일까? 시험도 해봤다고 한다. 홍진기 씨는 “평택에서 거제까지 운전해서 갈 수 있게 되면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갖게 됐다.”고 말한다.

▲ 경기도 사회적경제협의회 이사장, 경기도 사회적경제CEO협의회 회장을 역임한 홍진기 씨는 2년 만에 뇌경색을 극복하면서 기적의 주인공이 됐다.

2022년 12월 현재 홍진기 씨는 “달리기 빼고는 뭐든지 다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특히 그는 재활병원에서 기록했던 장장 9개월의 투병일지를 책으로 출판까지 했다. <포기하지 않아서 기적을 만나다>라는 제목으로 출판돼 뇌경색 환자에게 새 희망을 전하고 있다.

뇌경색 후유증을 거뜬히 이겨내고 멋지게 기사회생한 홍진기 씨가 전하고 싶어 하는 메시지는 하나다. “의지만 꺾지 않으면 누구에게나 기적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에게 일어난 기적이 모든 사람들에게도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2023년 새해에는 강의도 하고 경험도 공유할 예정이다. 이미 일정도 잡혀 있다. 뇌병변협회 자문위원으로 위촉이 되면서 2~3월부터는 강의가 예정돼 있다.

홍진기 씨는 “단 한 사람에게라도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싶다.”고 말한다. 그것이 새롭게 시작된 인생 2막의 새로운 목표이기 때문이다.

허미숙 기자  kunkang198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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