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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희망가] 말기 위암 수술 후 21년 봄길 윤갑노 씨가 사는 법2022년 1월호 22p

【건강다이제스트 | 허미숙 기자】

“치유의 의지가 있으면 내 몸의 세포도 즉각 변합니다”

1999년 10월, 위암 초기 진단을 받았다. 수술을 하자고 했지만 내키지 않았다. 몸에 칼을 대는 순간 암세포가 전신으로 퍼질 것만 같았다.

2000년 4월, 혈변이 나왔다. 입으로도 핏덩이가 나왔다. 결국 6개월 만에 위를 3분의 2나 잘라내는 수술을 했다.

그 후로는 병원에 간 적이 없다. 그렇게 21년이 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기 위암 수술 후 21년째 장기 생존하며 암 환우들 사이에서 희망의 증거가 되고 있다. 제주도에서 약초를 캐고, 치유음악회를 열고, 약초된장을 만들면서 하루 종일 분주하게 사는 봄길 윤갑노 씨(66세)를 만나봤다.

1999년 10월에 ‘암 초기’

IMF가 터지면서 하던 사업도 접었다. 철 구조물을 조립하고 설치하는 건설업이었지만 IMF로 된서리를 맞았다. 당장 먹고 살 일이 막막해 양말장사도 하고 트럭장사도 했다. 하지만 형편은 좀체 나아지지 않았다. 1999년 6월, 새로운 살길을 찾아 제주도로 향했던 이유다.

제주살이를 시작한 지 4개월쯤 됐을 때였다. 서울에서 가족 모임이 있었다. 모처럼 모인 기념으로 인천 소래포구에 가서 새우소금구이도 먹었다. 그런데 속이 안 좋았다. 복통이 심했다. 서울 동네병원에서 내시경을 찍었다. 그런데 담당의사가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그 후의 일은 짐작대로다. 윤갑노 씨는 “여의도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암이 초기를 넘어섰다.”며 “수술 날짜를 바로 잡자는 말을 들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망설여졌다. 자꾸만 떠오르는 생각 하나가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윤갑노 씨는 “몸에 칼을 대면 암세포가 전신으로 확 퍼지는 기전을 알고 있었다.”며 “수술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고 말한다.

그랬던 그는 결국 수술을 포기했다. 평소 명상 수련을 하고 기 수련에 관심이 많았던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윤갑노 씨는 “수술 대신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니시요법을 해보자 마음을 먹었다.”고 말한다.

니시요법 실천한 지 6개월 만에…

초기 위암 진단을 받았던 윤갑노 씨가 수술 대신 선택한 니시요법은 풍욕을 하고, 냉온욕을 하고, 생식을 하고, 단식을 하는 자연요법의 일종이다.

윤갑노 씨는 “이른 새벽부터 할 수 있는 건 다해보자며 풍욕을 하고 냉온욕을 하고 생식도 하면서 니시요법을 본격적으로 실천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렇게 6개월쯤 지났을 때였다. 2000년 4월 초 단식에 들어갔다.

그런데 단식 4일차에 문제가 생겼다. 피설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입으로도 시커먼 피가 쏟아졌다.

윤갑노 씨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모골이 송연해진다.”고 말한다.

제주 병원에서 응급처치만 하고 부랴부랴 서울로 향했고, 상태가 좋지 않다며 곧바로 수술을 권했다. 가족들도 난리가 났다. 의사도 아니면서 고집을 부려서 이렇게 됐다며 원망, 비난이 쏟아졌다.

윤갑노 씨는 “겨울 추위를 이겨내며 피나게 했던 노력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지자 만감이 교차하더라.”며 “2000년 4월, 자의반 타의반 수술을 하게 됐다.”고 말한다.

위를 3분의 2나 잘라냈다. 항암치료도 해야 한다고 했다. 또다시 시작된 고민! ‘항암치료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항암치료에 대한 논란이 너무도 많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담당 주치의로부터 속 시원한 말도 듣고 싶었다. “항암치료를 하면 회복될 확률이 어느 정도 되나요?” 그런데 담당 주치의가 확실한 대답을 안 했다.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윤갑노 씨는 “지금이라면 이해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당시로선 너무 화가 나더라.”고 말한다. 생사의 기로에 선 환자가 궁금해 하는 부분을 의사는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항암치료를 포기하고 병원문을 나섰다는 윤갑노 씨! 가족들은 또 고집을 부린다며 난리가 났지만 끝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항암치료 대신 살기 위해 했던 것!

항암치료를 포기하고 제주도로 돌아왔지만 아내는 약봉지를 한 아름 안고 왔다. 병원에서 준 거라고 했다. 하루에 먹어야 할 약이 한 번에 8개씩, 총 24개나 됐다. 무슨 약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왜 먹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윤갑노 씨는 “3일 동안 약봉지를 앞에 놓고 고민하다가 결국 약봉지를 휴지통에 버렸다.”고 말한다.

2000년 5월, 따사로운 햇살에 몸을 맡기고 조용히 명상을 하면서 ‘죽고 사는 것은 내가 결정하자.’ 결심했다.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했다. 누구든지 다 죽는다며 독하게 마음먹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는 없는 일!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윤갑노 씨가 새롭게 시작한 일이 있었다. 날마다 약초 책을 끼고 약초를 캐러 다니기 시작했다. 항암약초 부분만 복사를 하고 코팅까지 해서 들고 다니며 약초를 캐러 다니기 시작했다. 바닷가로 오름으로 무작정 약초를 캐러 다녔다.

절실한 마음으로 약초를 채취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소름까지 돋았다.

윤갑노 씨는 “기쁨을 느끼는 순간 소름이 돋는 몸의 반응을 보면서 우리 몸이 생각이나 의식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됐다.”고 말한다.

▲ 윤갑노 씨는 제주도에 ‘수신재’라는 치유 공간을 마련하고 건강프로그램도 강의하고, 치유 경험도 나누고, 약초기행도 하고, 수신재치유음악회도 개최하면서 위로와 공감을 전하는 일에 열심이다.

눈만 뜨면 약초 캐는 데 혈안이 되어서 제주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좋은 점도 한둘이 아니었다.

첫째, 온몸의 순환계가 생생 잘 돌았다. 혈액도 잘 돌고, 림프도 잘 돌고, 기 순환도 잘 됐다. 하루 종일 약초를 캐러 다녀도 전혀 피로하지 않았다.

둘째, 오로지 약초 캐는 데만 정신을 집중하다 보니 잡념, 걱정, 두려움이 없어졌다. 약초가 어디에 있을까 그 생각에 사로잡혀 아프다는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약초 캐는 그 자체가 최고의 명상 수련이 됐다.

셋째, 날마다 채취한 약초는 건강의 일등공신이 되어주었다. 직접 캔 약초를 달여서 차로 마시고, 밥도 지어먹고, 약초된장도 만들어서 먹었다. 약초를 치유음식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병원 갈 일도 없었다.

그렇게 살아온 지 어느덧 21년! 2021년 11월 현재 윤갑노 씨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치유공간에서 치유 경험 공유

윤갑노 씨는 제주도에 ‘수신재’라는 작은 치유공간을 열었다. 차도 마시고 명상도 하고 기 수련도 하는 공간이다. 건강 프로그램 강의도 하고, 치유 경험도 나누고, 약초된장도 만들고, 약초기행도 진행한다.

윤 씨는 “치유의 힘은 온전히 내 몸 안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작은 치유 공간을 마련했다.”고 말한다.

의념치유 수련법을 교육하고 치유기공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도 그래서다. 마음이 흔들릴 때 명상을 하면서 두려움을 잠재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픈 부위에 생각을 집중하면 통증이 사라지는 것도 경험했기 때문이다.

5월부터 11월까지 제주도 곳곳으로 약초 기행도 다닌다. 약초를 캐면서 느꼈던 희열감이 치유의 에너지가 됐다는 걸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치유의 음식으로 약초된장도 만든다. 항암약초로 알려진 겨우살이, 꾸지뽕, 하고초, 산죽, 짚신나물, 황칠나무, 오가피, 느릅나무 등 암에 좋은 12가지 약초를 달여서 된장을 만든다. 그것도 가마솥에 장작을 때어서. 물도 한라산에서 길어온 물을 쓰고, 소금도 5년 이상 간수를 빼서 사용한다. 콩도 100% 무농약 콩이나 유기농 콩을 사용한다. 직접 지은 황토방에 무농약 볏짚까지 깔아 메주를 띄울 만큼 온갖 정성으로 만든다. 윤갑노 씨는 “수행하는 마음으로 약초된장을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 윤갑노 씨는 약초된장을 정성들여 만들고 있다.

해마다 치유음악회를 개최하면서 위로와 공감을 전하는 일에도 열심이다.

2012년 동네 음악회에서 시작된 수신재치유음악회는 음악을 통해 봉사의 삶을 살고 있는 지인 홍성택 씨와 그의 친구들이 참여해 치유를 기원하는 연주를 펼친다.

그러면서 어느덧 제주의 명물이 된 수신재는 암 환우들에게 희망의 산실로 통한다. 그래서 하루 종일 바쁘게 산다는 윤갑노 씨!

건강은 괜찮을까? 윤갑노 씨는 “암 수술 후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믿을 수 없는 표정에 윤갑노 씨는 “조금만 아프면 병원부터 달려가는 대신 다른 것을 했다.”고 말한다.

배가 아프면 아픈 부위에 생각을 집중하고 뜨거운 에너지를 아픈 부위에 보낸다. 그러면 통증도 서서히 사라지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그래도 안 되면 바닷가에서 넓적한 돌 하나를 주워 불에 구운 다음 통증 부위에 찜질을 하면 대부분의 통증은 사라진다.

윤갑노 씨는 “편협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면서 크게 아픈 데 없이 잘 지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런 그의 하루하루가 궁금해서 물었다. 조금 특별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윤갑노 씨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생활을 한다.”고 말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따뜻한 차 한 잔을 우려서 마신다. 다양한 약성을 가진 약초차를 마신다.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면 몸도 따뜻해지고 기분도 좋아진다. 그렇게 20~30분 정도 차를 마시면서 차명상을 한다.

온몸을 두드려서 독소를 배출시킨다. 어제 먹은 밥이나 음식은 소화되어 칼로리를 만들어 쓰이거나 저장되기도 하고 남은 것은 대변으로 배설되지만 다 배설되지 않고 일부는 몸에 쌓인다. 이렇게 쌓인 독소를 배출하기 위해 온몸을 두드린다. 가스로 나오면서 배출이 되기 때문이다.

식사는 간단히 한다. 고구마 한 쪽, 감자 한 알로 아침을 먹고 점심, 저녁도 소식한다. 많이 먹어서 몸속에 쌓이지 않게 한다.

수행하는 마음으로 만든 약초된장은 지금도 즐겨 먹는다. 치유의 음식으로 먹는다.

하루 종일 움직인다. 아침에 일어나 따뜻한 차 한 잔 마시고 계속 움직인다. 일이 없으면 일을 만들어서라도 움직인다. 온몸의 순환계가 술술 잘 돌아가게 항상 움직인다.

말기 위암 수술 후 21년째 장기 생존하고 있는 행운도 이런 생활 덕분이라고 믿고 있는 윤갑노 씨!

그런 그가 암 환우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다. 치유의 의지가 있어야 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치유의 의지가 있으면 내 몸의 세포도 즉각적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윤갑노 씨가 꼭 추천하고 싶어 하는 건강 지침은 크게 3가지다.

하나는, 몸을 항상 따뜻하게 유지한다. 따뜻한 차를 마셔서 몸을 덥히고, 따뜻한 햇살에 아픈 몸을 노출시켜 태양에너지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좋다.

둘은, 음식은 골고루 먹되 소식한다. 인스턴트 음식, 가공식품 대신 자연에서 찾은 치유음식을 먹는다.

셋은, 몸을 항상 움직인다. 그래야 잡념도 사라진다. 공포와 두려움도 사라진다. 암세포는 의식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전이도 재발도 미리 걱정하지 말고 항상 몸을 움직여 순환계를 촉진시키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러면 건강은 절로 좋아진다.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 차 한 잔 마시는 여유를 누릴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윤갑노 씨! 긴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끝까지 강조한 말은 “치유의 힘은 온전히 내 몸 안에 있다.”며 “늦기 전에 스스로 공부하라.”는 당부였다.

허미숙 기자  kunkang198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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