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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희망가] 유방암 수술 후 11년 오현지 씨 장기생존의 비밀2021년 12월호 22p

【건강다이제스트 | 허미숙 기자】

“각설이로 살면서 새 생명도 얻었어요”

2010년 2월, 유방암 수술을 했다. 3기말이라고 했다. 항암치료 6회, 방사선치료 30회도 함께 받았다. 그때 나이 57세. 줄줄이 이어진 시련에 넌덜머리가 났다.

홀로 두 아이를 키우며 안 해 본 것이 없었다. 은수저공장도 했고, 한식식당도 했고, 택시운전도 했다. 여행사를 하면서 한때 ‘억’소리 나게 벌기도 했지만 배신을 당하면서 모든 것을 잃었다.

그런 와중에 유방암? 파란만장한 운명에 치를 떨었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모든 걸 포기하고 전국을 일주하는 마지막 여행도 했다.

그랬던 사람이 지금은 암 환우들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고 있다. 유방암 수술 후 11년째 장기 생존의 주인공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남양주에 사는 오현지 씨를 만나봤다.

2009년에…

잘 되던 여행사가 직원의 횡령으로 문을 닫으면서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을 때였다. 설상가상 친정어머니가 갑자기 치매 초기 증상까지 보여 눈앞이 캄캄했다. 무작정 어머니와 함께 전국 일주에 나섰던 이유다. 증상이 심해지기 전에 좋은 추억이라도 남기고 싶었다.

그렇게 떠난 여행길에서 오현지 씨는 “포항 구룡포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그곳에서 살 결심을 했다.”고 말한다.

확 트인 바다가 마음에 쏙 들었다. 재기의 발판도 마련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일사천리로 서울살이를 정리하면서 포항 구룡포의 새 삶에 기대를 품고 있을 때였다.

오현지 씨는 “전입신고부터 하기 위해 동사무소에 갔다가 보건소도 들렀다.”며 “보건소에 간 김에 생전 처음 건강검진을 받게 됐다.”고 말한다.

그런데 10일 후 뜻밖의 연락이 왔다.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유방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오현지 씨는 “하필 그날이 2009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였다.”며 “다들 즐거워하는 그날 홀로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2010년 2월에…

2010년 1월, 서울 퇴계로에 있는 여성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는 곧바로 나왔다. 악성 종양이라고 했다. 곧바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숨이 턱 막혔다. 펑펑 울 수도 없는 처지가 너무 서러웠다. 오현지 씨는 “자식들한테는 말도 못하고 홀로 수술 날짜를 잡았다.”고 말한다.

2010년 2월, 유방암 수술을 했다. 수술 후 3기말이라는 말도 들었다. 그래서 항암 6회, 방사선 30회 처방도 함께 받았다.

그 와중에 닥친 또 다른 불행! 오현지 씨는 목메는 소리로 “유방암 수술을 하던 그 시간에 어머니가 운명을 달리했다.”며 “수술을 한 지 3일 만에 피주머니를 차고 보았던 어머니 영정 사진은 지금도 서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였을까? 독한 항암치료 6회도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 못 먹고 못 자도 그냥 무시했다.
방사선치료 30회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온몸 곳곳에 후유증을 남겼지만 그냥 참았다. 방사선 치료 부위에 물집이 잡히면서 진물이 줄줄 흘러내려도 그냥 참았다.

오현지 씨는 “암 수술을 하고 어머니까지 여의니 살아온 인생이 너무 허무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수술, 항암, 방사선 치료로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집을 나섰던 것도 ‘마지막으로 해보고 싶은 것을 원 없이 해보고 죽자.’며 감행한 일이었다.

오현지 씨는 “암보험금으로 나온 2천만 원으로 빚 청산을 하고 남은 돈 800만 원은 차 밑 발판에 깔고 여행길에 올랐다.”고 말한다.

부산, 울산, 양산, 목포, 진도로 핸들 가는 대로 내달렸다. 날마다 차 밑 발판에서 한 주먹씩 현금을 꺼내 먹고 싶은 것도 사먹고, 하고 싶은 것도 하면서 20일 동안 전국을 누비고 다녔다.

오현지 씨는 “20일간 전국을 돌면서 펑펑 쓰고 다녔지만 585만 원의 잔고가 남았다.”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원 없이 펑펑 쓴 것이 215만 원이었다.”고 말한다.

자식들이 눈에 밟혀서…

2011년, 오현지 씨가 죽겠다는 생각 대신 경기도 남양주 수동면에 있는 요양병원으로 향했던 이유다. 오현지 씨는 “해준 것도 별로 없는 자식들 가슴에 대못까지 차마 박을 수는 없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미련은 좀체 생기지 않았다. 암 수술 후유증으로 팔조차 제대로 들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 서러웠다. 끝없이 이어지는 시련도 너무 원망스러웠다.

요양병원에서도 한동안 눈만 뜬 채 시간을 축냈다고 한다. 삶의 희망이 없었다. 그러니 건강을 돌볼 이유도 없었다. 운동도 안 했다.

그래서였을까? 팔이 퉁퉁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오른쪽 팔이 허벅지만큼 퉁퉁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터질 듯이 부풀어 올라 간단한 세수조차 힘들었다.

오현지 씨는 “이때부터 일 년에 한 번씩 팔 부종 수술을 해야 했다.”며 “장장 6년 동안 6번이나 팔 수술을 했다.”고 말한다. 수술할 때만 조금 빠지다가 다시 퉁퉁 부어오르면서 끈질기게 괴롭혔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하루하루 고통스런 나날도 이어졌다. 그런데 오현지 씨는 “삶의 기쁨을 새롭게 알게 된 것도 바로 이 시점부터였다.”고 말한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오현지 씨는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내려놓으면서 사는 즐거움도 알게 됐다고 말한다.

각설이 타령하면서 새 생명 얻어

2012년 어느 날, 요양병원 근처 복지센터에 봉사단체가 공연을 왔다.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기타도 치고 하모니카도 불었다. 마지막 순서로 각설이 타령도 했다.

이 공연을 구경하던 오현지 씨는 “각설이 타령이 하도 이상해서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머리에 질끈 동여매고 각설이 타령 시범을 보였다.”고 말한다.

무슨 용기에서 그렇게 했는지 지금도 설명할 길은 없다. 퉁퉁 부어오른 팔에는 압박 토시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 몸으로 공연 무대에 올라 신나게 각설이 타령을 했다. 정식으로 배운 적도 없었다. 여행사를 하면서 어깨너머로 봤던 게 전부였다.

그런데 각설이 춤을 추자 사람들이 환호했다. 모두들 일어나 다함께 각설이 춤판이 벌어졌다.

오현지 씨는 “한바탕 신나게 각설이 춤을 췄더니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됐지만 생전 처음으로 삶의 희열을 느꼈다.”고 말한다. 너무도 강력하고 너무도 짜릿했다.

이때부터였다. 각설이 타령을 하면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우스꽝스런 분장을 하고 각설이 타령을 했다. 복지센터도 가고, 요양병원도 갔다. 비록 팔은 퉁퉁 부어 있어도 각설이 춤을 췄다.

그러면 살맛이 나서 좋았다. 고통을 잊을 수가 있어서 좋았다. 새 세상이 열리는 것 같아서 행복했다.

그래서 평생 봉사하는 삶을 살자 결심했다는 오현지 씨!

그런 그녀는 “각설이 타령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하면서 새 생명도 얻었다.”고 말한다.

봉사하는 삶은 사는 기쁨을 안겨줬기 때문이다. 봉사하는 삶은 건강을 선물해줬기 때문이다.

오현지 씨는 “봉사하는 삶을 살게 되면서 비로소 절망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며 “그래서 봉사는 삶의 전부가 됐다.”고 말한다.

▲ 오현지 씨는 부르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지 달려가 각설이 타령을 하면서 봉사하는 삶을 산다.

2021년 10월 오현지 씨는…

2021년 10월 초,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에서 만난 오현지 씨는 11월 13일에 열리는 소리극 ‘물골안팔경가’ 공연 준비로 바빠 보였다. 신명나는 각설이 타령으로 웃음과 재미를 선사할 예정이라고 했다. 또 한국여성연합신문 창간 멤버로 동참하게 됐다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유방암 수술을 한 지도 어느덧 11년! 건강은 어떨까?

오현지 씨는 “6번의 수술로 팔 부종이 좋아지면서 2019년 8년 만에 요양병원에서 퇴원을 했다.”며 “지금도 종종 팔이 욱신거리고 저려서 물리치료를 다니긴 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 이유를 묻자 오현지 씨는 “두 가지 때문인 것 같다.”고 말한다.

첫째, 마음을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욕심 부리지 않는 삶을 산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도 안다. 삶과 죽음에 연연해하지도 않는다. 모든 것을 운명으로 여긴다.

오현지 씨는 “마음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니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둘째, 봉사하는 삶을 산다. 스스로가 행복해지기 위해 각설이 춤으로 봉사활동을 한다. 푼수처럼 살면서 웃음도 선물하고 재미도 선사한다.

오현지 씨는 “이렇게 살면서 무얼 챙겨먹지 않아도, 특별한 비법이 없어도 건강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유방암 수술 후 11년째 장기 생존자로서 암 환우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도 두 가지다.

하나는, 마음 비우기다. 욕심을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봉사하는 삶이다. 즐겁고 행복한 일이기 때문이다.

비록 통장 잔고에는 노령연금이 전부지만 그 돈까지 써가며 봉사활동을 한다는 오현지 씨!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황금기 같다고 말하는 그녀의 삶에 은혜로운 축복이 가득하길 응원해 본다.

허미숙 기자  kunkang198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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