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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희망가] 장폐색에 직장암까지…테너 허양 교수가 사는 법2021년 9월호 22p

【건강다이제스트 | 허미숙 기자】

“나눔 실천하면서 치유의 삶도 살게 됐어요”

성악을 전공했다. 창을 하던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어릴 적부터 노래를 잘했다. 성악가의 삶을 운명으로 여겼다. 1992년, 이탈리아로 유학길에 오르면서 원대한 꿈도 있었다.

‘세계무대에서 자웅을 겨뤄보자.’

그렇게 전도양양했던 성악가는 지금 어디든 부르면 달려가 노래봉사를 한다. 장애인단체도 찾아가 노래봉사를 하고, 요양병원에 찾아가 콘서트도 연다. 노래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일에 두 팔 걷어붙이고 열심이다. 그 일은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이라고 말한다. 그 일은 자신의 생명을 살리는 길이라고 말한다.

유학파 감성 테너 허양 교수(60세)가 그 주인공이다.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이기도 한 그는 살기 위해 노래봉사를 하고, 살기 위해 나눔을 실천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그가 지난 23년간 남모를 고통을 겪으며 살아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

1998년 이탈리아 유학시절 직장에 난 종기를 수술하면서 걸핏하면 장폐색이 나타났다.

2016년에는 직장암 진단까지 받았다.

2018년에는 대장내시경도 못하는 처지가 됐다. 항문이 너무 좁아졌다고 했다.

줄줄이 이어진 시련에도 불구하고 노래봉사를 통해 아픈 사람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전하는 뮤직 테라피스트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허양 교수를 만나봤다.

유학생활 6년 만에…

1992년 유학길에 올랐던 허양 교수는 “성악의 본고장 이탈리아에서의 유학생활은 힘들었지만 행복했다.”고 말한다. 갖은 고생 끝에 이탈리아 비첸자 국립음악원을 졸업하고, 이탈리아 북부도시 베네토 로비고의 시립극장에서 창작오페라 ‘GRADUS’로 데뷔도 했다.

이탈리아 베네토 지방을 중심으로 비첸자, 베로나, 베니스 등에서 초청 독창회를 하면서 활동 무대를 넓혀가는 것도 가슴 벅찼다. 잊지 못할 감동의 순간도 있었다. 사비아도로콩쿨에서 입상하는 영예도 안았다.

유학생활 6년째인 1998년도 마찬가지였다. 성악가로서 보폭을 넓히기 위해 동분서주할 때였다.

그런데 웬일인지 먹기만 하면 배가 아팠다. 처음에는 ‘별일 아니겠지.’ 했다. 5개월쯤 지나 혈변이 나오기 시작했을 때도 ‘치질인가?’ 했다.

하지만 출혈량이 너무 많아지자 겁이 났다. 이탈리아 시립병원을 찾아갔던 이유다. 담당의사는 검사를 하자마자 곧바로 입원을 권했다. 직장 위쪽에 종기가 있다고 했다. 상당히 크니 곧바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입원한 다음 날 수술을 했다. 2주 후에는 퇴원도 했다. 직장에 생긴 종기 치료도 그렇게 끝이 났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수술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갑자기 장폐색이 나타났다. 장이 뭉치면서 소통이 안 되니 분초를 다퉈 응급실로 달려가야 했다.

허양 교수는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나면서 하루하루 살얼음판 인생이 되어버렸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악가로서의 담금질은 멈추지 않았던 그다. 2001년에는 독일로 활동무대를 옮겨 새로운 공연도 준비했다.

그러던 어느 날, 피자를 먹다가 정신을 잃었다. 또다시 나타난 장폐색! 응급실에 실려 갔던 허양 교수는 또다시 수술을 해야 했다. 이탈리아에서 했던 수술 부위가 장을 누르고 있어서 재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재수술까지 하게 되면서 직장, 대장, 소장 일부까지 1m 30cm가 잘려나갔다. 그 후유증은 실로 컸다.

허양 교수는 “재수술을 한 지 일주일 만에 또다시 장폐색이 나타나면서 온몸의 기능이 올 스톱을 해버렸다.”고 말한다.

두 시간마다 파란 위액을 토해낼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숱한 검사를 했지만 원인조차 모르겠다고 했다.

허양 교수는 “파란 위액을 토해내면서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하나님 목숨만 살려주세요.’ 기도했다. ‘살려주시면 헌신하며 살겠다.’ 매달렸다.

그런 기도 덕분이었을까? 4일 만에 비로소 장폐색은 풀렸지만 암담했다. 언제 또다시 장폐색이 나타날지 몰라 조마조마했다.

허양 교수는 “두 달 동안 입원해 있으면서 58kg이던 몸무게가 41kg으로 줄어들었다.”며 “온몸은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고 말한다.

그런 그에게 독일 병원으로 자리를 옮겨온 미국계 한국인 의사가 이상한 말을 했다. 치즈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치즈가 체질에 맞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다면서 살려면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허양 교수는 “2002년 죽어도 괜찮다는 각서를 쓰고 결국 비행기에 올랐다.”며 “병든 몸으로 고국 땅을 밟으면서 느꼈던 참담함은 지금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말한다.

어디든 부르면 달려가 공연 펼치는 성악가

2002년 건강이 발목을 잡으면서 귀국길에 올랐던 허양 교수! 그 상실감이야 말로 다 못하지만 조금씩 먹을 수 있고, 조금씩 움직일 수 있게 되면서 곧바로 결심했다. ‘찬양하는 삶을 살자.’ 귀국한 지 3개월 만에 아픈 몸으로 신학 공부를 시작한 것도 그래서였다. 목회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2008년에는 목사 안수도 받았다.

그런 와중에도 건강은 여전히 브레이크를 걸었다. 아내의 지극정성으로 음식도 가려먹고 익혀서 먹는 등 갖은 노력을 했지만 1년에 서너 번 응급실을 찾아야 했다.

병원에서 하는 말도 늘 같았다. 음식 때문이라고 했다. 두 번의 수술로 대장, 직장, 소장을 1m 30cm나 잘라낸 것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했다. 마땅한 예방법도 없다고 했다. 음식을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런 고통이 이어지면서 허양 교수의 삶도 많이 달라졌다.

첫째, 가진 것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둘째, 아낌없이 나누며 살기 시작했다.

유학파 테너로서 파격적인 행보를 시작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성악가로 성공한 허양 교수는 계속되는 장폐색으로 2002년 귀국했다. 귀국 후에는 나눔 콘서트를 열고, 요양병원이나 복지관에서 노래 봉사를 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걸어왔다.

2004년부터 음악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공연을 하는 남성 중창단 테너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우주호의 음악친구들이라는 남성 중창단 멤버로 들어갔다. 화려한 극장 무대를 버리고 양로원, 보육원, 학교 강당, 운동장 등에서 공연을 했다. 그래서 붙여진 공연이름도 모세혈관 문화운동! 실핏줄이 산소를 인체 구석구석 실어 나르듯 음악의 향기를 전국 방방곡곡으로 실어 날랐다. 2008년까지 이어지면서 총 300회의 공연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2007년부터 장장 4년간 경기문화의전당에서 시민을 위한 나눔 콘서트를 개최했다. 또 경기지역 장애단체나 독거노인, 요양원 등을 찾아가는 공연도 매년 50회 이상 펼쳤다.

2007년부터 남성 앙상블 ‘음악친구비블라모예술단’ 대표를 맡아 찾아가는 열린음악회를 개최하기도 하고, 안양시민오페라단 단장을 맡아 활발한 활동도 펼쳤다.

2015년에는 아이소리앙상블이라는 청각장애 아이들로 구성된 합창단을 만들어 공연을 하기도 했다.

허양 교수는 “아무리 조심해도 끈질기게 나타나는 장폐색으로 건강이 썩 좋진 않았지만 어디든 부르면 달려가 공연을 하고, 노래하는 목사로 찬양도 했다.”며 “그것을 주어진 소명으로 여겼다.”고 말한다.

엎친 데 덮친 격… 직장암 진단

2016년은 허양 교수가 또다시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진 해다. 장폐색으로 장이 멈춰 대장항문병원에 입원을 했다. 그런데 직장수지검사를 하던 담당의사가 조직검사를 해봐야 한다고 했다.
우려는 곧바로 현실이 됐다. 조직검사 결과 악성이라고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기 초기라고 했다.

그런데 복병이 있었다. 더 이상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했다. 이미 두 번의 수술로 장기가 너무 짧아져 있다고 했다.

허양 교수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내시경 수술로 보이는 종양만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렇게 직장암은 일단락됐지만 날마다 기도하고 음식도 조심했다. 6개월에 한 번씩 내시경 검사를 하면서 체크도 착실히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직장암 수술 후 1년이 지나도 장폐색이 나타나지 않았다. 5년이 지난 2021년 현재도 마찬가지다.

▲ 허양 교수는 어디든 부르면 달려가 노래봉사를 하고 강연도 한다. 그것을 주어진 소명으로 여긴다.

허양 교수는 “아무리 운이 나빠도 한 가지 행운은 주어지는 것 같다.”며 “직장암 수술 후 한 번도 장폐색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설사를 하는 횟수도 팍 줄었다고 한다. 거의 정상인처럼 살고 있다고 말한다.

다만, 한 가지 걱정스러운 것은 2년 전부터 대장내시경을 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허양 교수는 “항문이 너무 좁아져서 더 이상 내시경을 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며 “그것도 감당해야 할 몫인 것 같다.”고 말한다.

2021년 현재 허양 교수는…

십수 년 고통받아온 장폐색, 그리고 직장암, 설상가상 대장내시경도 힘든 상황까지…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가혹하게 느껴지지만 꿋꿋이 버텨온 허양 교수!

2021년 경기도 남양주에서 만난 허양 교수는 우렁찬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얼굴에도 광채가 났다.

그래도 건강은 괜찮은지 궁금했다. 허양 교수는 “부르는 곳 어디든 달려가 노래봉사를 하면서 건강에 대한 걱정도 많이 내려놓았다.”고 말한다.

▲ 허양 교수는 건강은 나눔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행복 에너지로 치유의 기적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늘 소식하고, 음식도 가려먹고, 장이 안 좋으면 굶으면서 조심조심 살고 있지만 전국 각지의 요양병원에 가서 암 환우들을 위한 희망콘서트를 하고, 복지관에 가서 무료 공연을 펼치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 행복 에너지로 오늘을 살고, 내일의 계획도 세운다는 그다.

그래서일까?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노래봉사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싶어 한다.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지만 나눔을 실천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한다. 건강은 확실히 나눔이 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암 환우들에게 전하고 싶어 하는 메시지도 그 연장이다. 무엇이든 다 좋다. 뜨개질로 모자를 떠서 나누는 것도 좋다. 뭐든 나눔을 실천하라고 권한다. 그러면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행복 에너지로 치유의 기적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오늘도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노래봉사를 하는 허양 교수!

그런 그의 삶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복음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허미숙 기자  kunkang198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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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양#직장암#건강다이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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