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끊게 하는 법칙 8] “블랙아웃은 알코올성 치매로 가는 지름길”

【건강다이제스트 | 보건복지부 지정 알코올전문병원 다사랑중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태영 원장】

술을 많이 마신 다음 날, 전날 밤 기억의 일부가 사라지거나 기억이 날 듯 말 듯 하는 소위 ‘필름이 끊긴다.’는 블랙아웃 현상은 알코올 의존증 환자가 아니더라도 과음 후에 종종 경험하곤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블랙아웃을 과음이 부른 해프닝 정도로 여기지만, 이것은 절대로 가볍게 여길 만한 일이 아닙니다. 블랙아웃을 반복해서 경험한다는 것은 알코올에 의해 뇌 손상을 입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알코올은 기억을 담당하는 뇌 속 해마세포의 활동을 둔하게 만들어 기억 형성을 방해합니다. 술을 마신 후 집에 어떻게 돌아왔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가물가물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특히 블랙아웃이 자주, 지속적으로 반복된다면 영구적인 뇌 손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고, 알코올성 치매가 진행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알코올성 치매란 과도한 음주로 인해 기억력을 비롯해 광범위하고 다양한 인지 영역에 손상을 입으면서 기능 장애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일상생활을 수행하는 데 문제가 발생하는 질환을 말합니다.

치매라고 하면 대부분 노인성 질환이라고 생각하지만, 최근에는 알코올성 치매 증상을 호소하는 젊은 환자가 계속 늘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치매센터가 작년에 발표한 ‘2019 대한민국 치매 현황’에 따르면 국내 치매 상병자 수 약 85만 명 중에서 약 8만 명인 9.8%의 환자가 65세 미만의 젊은 치매 환자입니다.
65세 이전에 발병하는 치매를 ’조기발생 치매’라고 하는데 조기발생 치매의 상당수는 유전에 의한 알츠하이머 치매이지만, 나쁜 생활습관이 큰 원인이 되는 혈관성 치매도 많이 발병하고 있습니다. 음주가 원인인 조기발생 치매는 약 10%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혹시 나도 알코올성 치매?

알코올성 치매가 의심될 때 나타나는 몇 가지 증상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가장 흔한 증상은 기억력 문제입니다.

초반에는 새로운 정보를 이해하는 것이 어렵고, 얼마 전 나눈 대화의 구체적인 내용을 빨리 잊는 등 최근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양상을 보이다가 점차 살았던 동네나 여행했던 도시처럼 예전 일들이나 이미 알고 있던 지식을 상기하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처음에는 건망증 정도로 여겨질 정도지만 병이 점차 진행되면 일상생활에도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둘째, 또 다른 흔한 증상 중 하나는 폭력적인 성격으로의 변화입니다.

뇌의 앞부분에 있는 전두엽은 감정과 충동을 조절하는 기관인데, 알코올에 쉽게 손상되곤 합니다. 알코올성 치매가 노인성 치매와 달리 발병 초기부터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은 전두엽 손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평소 유순한 사람이 술만 마시면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말을 하거나 그런 행동을 한다면 전두엽 손상을 의심해 봐야 합니다.

셋째, 무기력, 우울, 과민 등의 증상을 호소하는 것 역시 알코올성 치매의 증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무기력, 우울 등으로 인해 일에 집중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목표를 세우고 판단을 하는 것도 불가능해지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무신경해 보이고 부주의해 보이기도 하고,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불안정해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감정 변화의 문제점 중 하나는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물론 치료의 가장 첫 단계인 금주 자체를 어렵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코올성 치매로 인해 손상된 뇌는 회복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알코올성 치매는 병의 진행 속도가 매우 빠르고 짧은 기간에도 급격하게 악화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알코올성 치매는 노인성 알츠하이머나 다른 혈관성 치매와 다르게 적절한 시기에 치료와 지원이 이뤄진다면 병의 진행속도를 늦출 가능성이 매우 높아집니다. 무엇보다도 술을 끊는 것만으로도 빠르게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블랙아웃을 비롯해 기억력 장애, 폭력적 성향과 같은 여러 증상이 나타난다면 자신의 음주 습관을 점검할 뿐만 아니라 검사와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최선의 방법은 술을 마시지 않는 것입니다.

김태영 원장은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수료 후 현재 보건복지부 지정 알코올전문병원인 다사랑중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알코올중독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김태영 다사랑중앙병원 원장 kunkang198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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