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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가 사는 법] 공감으로 치료하는 우울증 명의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홍진 교수2021년 3월호 24p

【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예민함을 관리하면 더 행복해집니다!”

예민한 사람이 많다. 예민하다는 말도 친숙하다.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마.” “제가 예민한 편이라서….”

수없이 접해본 말이다. 예민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사는 게 힘들다. 할 수만 있다면 예민하지 않게 살고 싶다. 예민한 성격의 자녀나 배우자가 있어도 피곤하다. 서로를 위해 예민함을 잠재웠으면 하지만 도와줄 방법을 모른다.

그래서일까?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홍진 교수가 쓴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이 출간하자마자 베스트셀러 대열에 합류했다. 6개월 만에 8만 부 이상이 팔려 화제를 모으고 있다. 블로그, 유튜브 등에 책을 읽은 소감을 담은 수백 편의 게시물이 올라 와 있고 중국, 타이완, 베트남 등에 판권을 수출했다.

오래전부터 매우 예민한 사람들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 우울증 치료의 권위자 전홍진 교수에게 내 안의 예민함을 잘 관리하는 방법을 들어봤다.

매우 예민하게 살면 생기는 일

2012년부터 2014년까지 하버드대학 부속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의 우울증임상연구센터에서 연수하며 전홍진 교수가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한국의 우울증 환자들은 건강염려증, 체중 감소, 불안, 불면증이 미국인보다 월등히 높게 나타났다. 자신의 기분을 잘 못 느끼고, 신체 감각에 예민했다.

진료실에서 만난 환자도 비슷했다. 전홍진 교수에게 터놓은 사연의 중심에는 보통 매우 예민한 마음이 있었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에게 예민한 것 같다고 말하면 대부분 동의했다.

꼭 우울증이 아니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매우 예민한 특성을 가진 사람이 많고 이로 인해 신체 증상이 많이 나타난다.

예민하다는 것은 외부의 자극에 민감한 신경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외부의 소리에 민감하고, 대인 관계를 할 때 상대를 자꾸 신경 쓰며, 걱정도 많은 편이다. 예민함을 타고난 경우도 있지만 트라우마를 경험하고 난 후에 생기는 경우도 많다.

예민성이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예민성을 잘 관리해서 이용하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이 놓친 것을 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 전홍진 교수가 만나 본 자기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이룬 사람의 대다수가 매우 예민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예민함을 다루는 좋은 방법을 터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성공했든, 평범하게 살든, 환자가 되었든 예민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보다는 자신을 피곤하게 하고 힘들게 삽니다. 또 예민한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우울증, 불면증, 공황장애 등의 정신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예민함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돕고 싶었던 전홍진 교수는 의사의 시각이 아닌 매우 예민한 사람들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무엇이 어려운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예민성이 삶에 도움이 되려면 어떠한 변화가 필요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고민했다.

예민한 사람들 역시 전홍진 교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예민한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 없냐고 물어왔다. 그 질문에 답하려고 많은 책을 살펴봤지만 딱히 추천할 만한 책이 없었다. 그렇게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이 탄생했다.

‘프로예민러’에게 조언 5가지

예민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느끼지 못하는 감각을 느끼고 각성 수준이 높아서 뇌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지기도 한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매사에 의욕이 없고 우울하고 불안해진다.

예민성이 높은 사람은 자신의 예민함이 ‘선’을 넘지 않게 잘 관리해야 한다. 전홍진 교수가 제안하는 예민함을 잠재우고 조절하는 실천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대화할 때는 상대 반응보다 대화에만 집중한다. 예민한 사람은 타인의 반응에 지나치게 신경을 쓴다. 대화할 때 말투가 딱딱하거나 날이 서 있다면 자신 때문인 것 같아 전전긍긍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의 표정이나 말투는 보통 성격이나 그날의 상태에 따라 좌우된다. 대화할 때는 상대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 신경을 쓰지 말고 대화 자체에만 집중한다. 좋은 말투와 좋은 표정을 연습하는 것도 좋다.

둘째,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지금을 산다. 심하게 걱정하면 더 예민해지고 실수할 확률이 높아진다.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고 변수가 너무 많다. 일주일 후를 걱정하면 일주일 치 걱정이 쌓인다.

셋째, 예민한 위장을 관리한다. 우리 위장은 뇌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예민한 사람이 긴장하면 위경련이 일어나거나 설사를 하는 것도 그래서다. 따라서 다음 날 중요한 일이 있으면 자주 먹던 음식을 먹는 것이 좋고, 긴장한 상태에서는 찬 음식, 우유, 회 등은 잘 소화되지 않으므로 피한다.

넷째, 잠을 잘 잔다. 예민한 사람은 항상 같은 시간에 일어나는 게 좋다. 일어난 뒤에는 완전히 잠을 깬다. 완전히 잠을 깨는 데 좋은 방법은 빛을 눈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오전에 햇볕을 쬐며 걷거나 빛이 들어오는 창가에 앉아 있는 것이 좋다.

다섯째, 적을 만들지 않는다. 예민한 사람은 자신을 싫어하고 공격하는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아 의심이 많아지고 경계가 늘어난다. 적을 만들지 않으려면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비하하는 행동을 삼간다. 다툼이 될 것 같으면 조금 손해 보는 거 같더라도 양보한다. 사실은 손해 보는 게 아니라 필요 없는 에너지 소모를 줄여서 이득이다.

코로나 우울증 예방하려면…

2017년부터 보건복지부가 위탁 운영 중인 중앙심리부검센터의 센터장을 맡아온 전홍진 교수는 지난해 제48회 보건의 날을 맞아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했다. 자살 예방을 위한 연구와 유족 지원에 힘써온 공로를 인정받았다.

▲ 전홍진 교수.

요즘에는 IT와 의학을 연결한 우울증 치료법을 연구 중이다. 가상현실, AI 등을 이용해 우울증을 평가하고 인지행동치료를 하는 방법을 준비하고 있다.

전홍진 교수에게 가장 기억나는 연구를 묻자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우울증에 대한 연구를 꼽았다. 아동기에 받은 학대의 상처가 뇌의 변화를 만들고 성인기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과거를 재경험하면서 우울증이 오기 쉽다는 결과를 얻었다.

“우울증을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의 변화를 통해 우울증을 발생시키는 아동기의 학대를 예방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최근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으면 합니다. 아동학대 근절을 위해서 온 국민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1년 넘게 모두가 겪고 있는 코로나 대유행도 우울증을 부추긴다. 평소에 예민한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에 더 영향을 받는다. 불안하고 짜증나고 외롭고 두려운 감정이 오래되면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 있다.

코로나가 가져온 예민함과 불안을 달랠 효과적인 방법은 자고, 먹고, 깨는 일상생활의 리듬을 코로나 이전처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밖에서 운동은 못 하더라도 오전에 창가에 앉아 밝은 빛을 쬐는 것도 좋다.

예민한 사람은 자신이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을까 지나치게 걱정하는 경향이 있다. 방역 수칙을 잘 지키고 마스크를 착용했음에도 심하게 감염에 대해 걱정하면 오히려 건강염려증만 악화시킬 뿐이다.

예민한 나에게 집중하기 좋을 때

어떤 사람은 전홍진 교수에게 묻는다. 아무리 의사라고 해도 온종일 우울한 사람만 만나면 우울해지지 않느냐고. 다행히 그렇지는 않다. 멘털이 강해서가 아니다. 환자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같은 경험을 했다는 착각에 빠져 동기화가 되면 공감과 치유의 실마리가 생긴다. 희망을 찾게 되어 우울할 일이 없다.

“일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면 ‘재미’와 ‘의미’가 있어야 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일이 있다면 그 일에서 재미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그 일이 잘된다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해보세요.”

만일 어떤 일이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다면 앞으로 그런 일을 하기 위한 준비 작업으로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지금 하는 일과 전혀 관계없고 완전히 긴장이 이완되는 시간을 만들면 좋다. 전홍진 교수도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쉬고 있지만 30년 동안 주말에는 바쁘더라도 테니스를 꼭 쳤다. 또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시간도 꼭 낸다.

코로나 대유행으로 거리 두기가 일상화됐다. 그러면서 가까워진 사람이 생겼다. 바로 ‘나’다. 지금이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기 좋을 때다. 예민하게 살아서 힘들었다면 지금을 전환점으로 삼아보자.

예민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예민성을 줄이는 노력을 시작해보자. 밖을 향해 있는 수많은 안테나를 끄고 내 마음을 바꾸고 내 습관을 바꿔보자. 전홍진 교수의 조언처럼 타인의 반응이 아닌 대화 자체에 집중하고, 잠을 푹 자보는 것부터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예민한 나도 소중한 나다. 예민함을 조절하고 관리한다면 얼마든지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정유경 기자  kunkang198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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