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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희망가] 편도선암 수술 후 12년 안승빈 씨가 사는 법2021년 1월호 80p

【건강다이제스트 | 허미숙 기자】

“욕심을 버리면 살만합니다”

2008년, 편도선암 진단을 받았다. 편도선암 4기 말기였고, 왼쪽 편도를 잘라내는 수술을 했다.

2011년, 3년 만에 편도선암이 재발했다. 방사선 치료 35회를 받으면서 초주검이 됐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2020년 11월 현재,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에서 ‘수동골 회장님’으로 불리며 인기남이 됐다. ‘수동골 봉사왕’으로 칭송도 자자하다.

그래서 암도 축복이 됐다고 말한다. 편도선암 수술 후 12년… 장기 생존의 주인공 안승빈 씨(73세)를 만나봤다.


2008년 8월에…

목감기인 줄 알았다. 목이 부으면서 아팠다. 예사로 여겼던 이유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도 낫지를 않았다. 왼쪽 목이 혹처럼 부어오르면서 목소리까지 잘 안 나왔을 때 동네 이비인후과에 갔다.

그런데 이상했다. 큰 병원으로 가라는 말만 했다. 부랴부랴 충남대병원으로 향하면서도 ‘별일 있겠어?’ 했다.

하지만 조직검사 결과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왼쪽 편도에 암이 생겼다고 했다.
안승빈 씨는 “이름도 생소한 편도선암 4기 진단을 받았다.”며 “림프로 전이까지 됐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한다.

집 대신 요양병원으로~ 나이 61세에 편도선암 4기!

‘술·담배도 안 했는데 왜?’ 이해가 안 됐다.

‘운동도 열심히 하면서 몸 관리를 했는데 왜?’ 납득이 안 됐다. 충남대 체육교육과 출신으로 8년간 중·고등학교에서 체육교사로 근무했던 경력까지 있었다.

다만, 10여 년간 대전에서 꽃 도매상을 하면서 무리를 했던 것은 마음에 걸렸다.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남들 다 자는 밤에 일하면서 못 자고 못 챙겨 먹었다.

그것이 화근이 됐던 걸까? 별의별 생각이 다 났지만 하루아침에 암 환자가 되어버린 현실은 기가 막혔다.

더군다나 상황도 별로 좋지 않았다. 하루가 다르게 목의 혹은 커져 가는데 지방병원에서는 수술조차 못한다고 했다. 갖은 우여곡절 끝에 서울 대형병원에서 수술을 하기까지는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다.

안승빈 씨는 “서울 원자력병원에서 암 크기를 줄여서 왼쪽 편도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며 “독한 항암치료와 수술로 하루아침에 몸은 만신창이가 돼버렸다.”고 말한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했다.

‘과연 회복할 수 있을까?’ 자신도 없었다.

그런 그에게 청주에 있는 성모꽃마을치유센터가 운영하는 5박6일 프로그램은 새 희망이 되어 주기에 충분했다.

안승빈 씨는 “비로소 암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어떤 생활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 투병 밑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병원치료가 모두 끝났을 때 대전 집으로 가는 대신 요양병원으로 향했던 것도 그래서였다.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암과의 대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독하게 마음먹어야 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안승빈 씨는 “경기도 남양주 수동면에 있는 요양병원에서 오로지 생존을 위한 일 분 일 초의 시간을 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일 분 일 초의 시간도 회복에 쏟아 부었지만…

2009년부터 2015년까지 햇수로 7년! 안승빈 씨는 “요양병원에서의 생활은 오로지 회복을 위한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첫째, 학연, 지연으로 맺은 인연을 모두 끊었다. 생사의 기로에서 오직 회복의 시간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둘째, 환우 회장을 맡아 봉사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환자 대표를 맡아 환우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발 벗고 나섰다.

매일 아침 환우들을 모아놓고 한 시간씩 체조봉사도 했다. ‘안승빈의 유연체조’를 동영상으로 만들어 전국의 요양병원에서 다운받아 따라할 정도로 체조 프로그램 개발에 일가견이 있었다.
날마다 식사 후에는 환우들을 인솔해 축령산 계곡까지 7~8km 되는 거리를 함께 운동하면서 환우들의 리더로서 특출한 재능도 발휘했다.

셋째, 시간 날 때마다 붓글씨를 쓰면서 마음을 다스렸다. 한 획 한 획 정성들여 붓글씨를 쓰면 외로움도 사라지고 잡념도 없어지고 마음이 평온해서 좋았다.

넷째, 식사는 현미식을 기본으로 제철식품을 골고루 잘 먹는 원칙을 고수했다.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암은 그리 만만한 존재는 결코 아니었다. 꼭 3년 만에 드러낸 재발의 덫! 안승빈 씨는 “암의 끈질긴 생명력에 진저리를 쳤다.”고 말한다.

죽 말고 밥 주세요! 수술한 지 3년 만에 편도선암 재발!

병원에서는 방사선 치료밖에 할 게 없다고 했다. 35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대로 끝인가?’ 솔직히 두려웠다. 하지만 그대로 무너지기 싫었다는 게 안승빈 씨 말이다.

▲ 안승빈 씨는 암으로 인해 하루하루 더 값진 삶을 살게 됐다고 말한다.

독한 방사선 치료로 물조차 넘기기 힘든 상태에서 “죽 대신 밥 주세요.” 했던 것도 그래서였다.
안승빈 씨는 “아침에 일어나면 목에서 선지 같은 피고름을 뱉어내면서도 죽 대신 밥을 먹었다.”고 말한다. 그래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한다. 안 넘어가도 꾸역꾸역 밥을 먹으면서 6층 병원 계단을 날마다 오르내렸다고 한다.

그런 덕분이었을까? 방사선 치료를 함께 받았던 같은 병실 3명의 환우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도 그였다. 죽을 먹었던 2명의 환우는 끝끝내 독한 방사선 치료를 견뎌내지 못했다.

안승빈 씨는 “암 환자들은 암으로 죽는 게 아니라 못 먹어서 죽는다는 말을 실감했다.”고 말한다.

현재 안승빈 씨는?

경기도 남양주시동부노인복지관에서 만난 안승빈 씨는 붓글씨를 쓰다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암 수술 후부터 쓰기 시작한 붓글씨는 한눈에 봐도 수준급이다. 전시회도 여러 번 했고, 붓글씨 대회에 출품해 특선도 했단다.

“건강은 어떠세요?” 이 물음에 안승빈 씨는 “재발도 이겨내고 5년 암 완치 판정을 받은 지도 5년이나 됐다.”며 “이제는 하루하루 가장 값진 날을 보내기 위해 빠듯한 일정을 산다.”고 말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날마다 집 앞 공원에 가서 청소도 하고 나무 가지치기도 하고 운동도 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날마다 성당에 가서 성전 청소도 하고 기도도 하고 묵상도 하고 성경도 쓴다.

일주일에 3일은 취미생활로 서예교실에 가서 붓글씨를 쓰고 출품도 하고 전시회도 한다. 한 달에 10일은 25명의 노인들을 인솔해 노인일자리에 가서 용돈도 번다.

봉사도 하고 취미생활도 하면서 바쁘게 살다 보니 울적할 틈이 없다는 안승빈 씨! 편도선암 수술 후 12년 장기 생존의 비결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일까? 암 환우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도 분명하다. 오늘 하루 가장 값진 삶을 살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라고 권한다. 운동도 하고 봉사도 하고, 취미생활도 하면서.

그렇게 살다 보면 암도 얼마든지 축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암으로 인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 내내 하회탈 같은 웃음을 지으며 “욕심을 비우면 살만하다.”고 말하던 안승빈 씨의 말은 지금도 긴 여운으로 남아 있다.

허미숙 기자  kunkang198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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