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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희망가] 간암과 친구처럼 14년… 수필가 김국현 씨가 사는 법2020년 12월호 24p

【건강다이제스트 | 허미숙 기자】

“병이 약이 됐어요”

1976년, 스물한 살 나이에 행정고시에 합격,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행정자치부 인사국장, 의정관 등을 역임했다.

2006년, 간암 2기 진단을 받으면서 생사의 위기를 맞았다. 5년 생존율 20%라는 통계는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 하나를 얹어놓았다.

그런 와중에도 시간을 쪼개 박사 학위를 따고 수석 졸업을 했다. 33년 공직생활도 멋지게 마무리했다. 은퇴 후에는 5개 대학에서 인기 강사로 활약했다. 수필가로 등단해 수필집도 여러 권 냈다.

잔존 암에서 재발 암까지 끈질긴 암의 발호에도 꿋꿋이 인생 2막을 개척해 온 사람! 간암과 친구처럼 살아온 14년 세월이 오히려 약이 됐다고 말하는 사람!

지금은 현대인의 마음 한 자락에 촉촉한 감성을 불어넣으며 수필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김국현 씨(65세)를 만나봤다.

2006년에 1차 색전술

행자부 의정관으로 근무할 때였다. 늦깎이 행정학 박사 코스도 밟고 있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였다.

2006년 11월, CT 검사에서 간 아랫부분에 3cm 크기의 종양이 보인다고 했을 때 눈앞이 캄캄했다.

‘박사 학위 논문은 어쩌나?’ 난감했다. ‘공직은 계속 수행할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왜 하필 내게?’ 억울한 생각도 들었다.

30대에 B형 간염 보균자라는 걸 알았지만 아무런 증상이 없어서 마음 놓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간암으로 그 실체를 드러낼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나이 51세에 간암! 5년 생존율은 20%! 더군다나 수술도 힘들다고 했다. 간 문맥에 암세포가 붙어 있어서 수술 대신 색전술을 하자고 했다.

김국현 씨는 “허벅지 대퇴부 동맥에 가는 관을 삽입하고 항암제를 투여하는 첫 번째 색전술을 했다.”며 “그때 느꼈던 공포와 충격은 지금도 가슴 서늘한 냉기로 남아 있다.”고 말한다.

잔존 암에서 재발 암까지…

1차 색전술 치료는 잘 됐다고 했다. 하지만 잔존 암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언제든지 같은 자리에 종양이 생길 수 있다는 거였다. 그런 말을 듣고 퇴원을 하면서 김국현 씨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서점이었다.

김국현 씨는 “전사처럼 싸워 이기려면 암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며 “서점부터 들러 암 관련 서적을 여러 권 구입했다.”고 말한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길을 끈 책이 있었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는 제목이었다. 김국현 씨는 “그 책을 보면서 투병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고 말한다.

첫째, 주말마다 산을 찾았다.

전국의 자연 휴양림을 훑고 다녔다. 유명산, 백운산, 축령산, 운악산 등산로는 지도를 그릴 만큼 자주 갔다. 청태산, 대관령, 진부령까지 전국의 산을 찾았고, 길도 나지 않은 산길을 타고 다녔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걷고 또 걸으면 마음이 편안해서 좋았다.

둘째, 하루 세끼 식단에도 변화를 줬다.

채소, 과일 위주의 제철식품을 골고루 잘 먹되 금기식품은 입에도 안 댔다. 술, 달인 물, 날것은 식단에서 철저히 배제했다.

셋째, 신앙심도 갖게 됐다.

생사의 기로에서 위로받고 싶었다. 의지하고도 싶었다. 이런 생활이 도움이 됐던 걸까? 김국현 씨는 “그렇게 바라던 두 가지 소망도 이룰 수 있었다.”고 말한다.

2009년, 행정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수석 졸업의 영예를 안았다. 2010년, 33년 공직 생활을 마무리하고 명예로운 은퇴도 할 수 있었다.

김국현 씨는 “암 때문에 원하던 삶을 포기하긴 싫었다.”며 “비록 내일 어찌되더라도 오늘 할 일은 꿋꿋이 하자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한다.

이 같은 그의 생각은 색전술을 했던 자리에 또 다시 잔존 암이 생겼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김국현 씨는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서너 차례 잔존 암의 발호가 있어서 색전술도 하고 고주파 열치료도 했지만 하고 싶은 일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잔존 암의 발호로 입·퇴원을 거듭하면서도 한국지방재정공제회 이사장을 2여 년간 역임했다. 강원대, 세명대 등 5개 대학에서 강의도 했다. 수필 공부도 새롭게 시작해 수필가로 등단하는 기염도 토했다.

김국현 씨는 “글을 쓰면서 마음속의 불안도 털어내고, 마음속의 응어리도 풀어낼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한다.

그런 강단에도 불구하고 암은 호락호락한 존재가 결코 아니었다. 2017년 봄, 새로운 모습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암 진단 후 11년 만에 ‘재발’의 발톱을 드러냈던 것이다.

50일간의 산방생활은 ‘치유의 시간’

2017년 6월 정기검진에서 간암이 자리를 옮겨 재발했다고 했다. 간 좌엽 위쪽 부분에 1cm 크기의 종양이 흐릿하게 보인다고 했다.

재발 암이 주는 압박감은 실로 컸다. 김국현 씨는 “뾰족한 철탑 위에 홀로 서 있는 느낌이었다.”고 말한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두려웠다.

색전술과 고주파 열치료가 끝나자마자 경기도 가평으로 향했던 이유다. 산속에 들어가 산방생활을 시작했다.

김국현 씨는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만들려면 결단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며 “자연에서 회복의 실마리를 찾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시작된 산방생활은 하루하루 치유의 시간이 되어주었다. 기어서 들어갔지만 하루가 지나니 일어나게 되고, 저녁이 되니 음식이 먹고 싶어졌다.

▲ 김국현 씨는 간암과 친구처럼 살아온 투병 14년은 인생의 황금기가 되어주었다고 말한다.

이틀이 지나니 산이 보이고 구름도 보이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몸이 달라졌다. 그래서 시작했다.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김국현 씨는 “하루하루 좋아지는 몸 상태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쓰기 시작한 일기에는 하루하루의 일상이 깊은 소회와 함께 낱낱이 기록돼 있다.

빗방울 소리에 병든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어내고 싶어 하는 마음도 기록돼 있고, 햇볕 좋은 날 돌의자에 앉아 햇볕을 쬐면서 했던 생각도 기록돼 있다.

또 날마다 산행을 하고, 자연의 먹거리를 먹고, 털기운동도 하고, 명상도 하면서 몸과 마음을 단련했던 비결들도 소상히 기록돼 있다.

김국현 씨는 “50일간의 산방생활은 건강의 큰 물줄기를 바꾸어놓았을 뿐만 아니라 가슴 벅찬 성취감도 함께 안겨줬다.”고 말한다.

병원검사에서 “1cm 크기의 종양은 고사 상태여서 어떠한 외과적 수술이나 치료도 필요하지 않다.”고 했고 “간의 다른 곳에서도 이상 징후는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또 하루하루 기록한 A4 150장에 이르는 투병일기는 <봉선화 붉게 피다>라는 수필집으로 재탄생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슴 찐한 감동을 선사했다.

2020년 10월 현재 김국현 씨는…

간암과 친구처럼 살아온 지도 어느덧 14년!

2020년 10월 초,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김국현 씨는 요즘 근황을 묻는 질문에 “기쁘고 즐거운 일이라면 뭐든지 찾아서 한다.”고 말했다.

공무원연금공단의 초빙강사로 한 달에 한두 번 강연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은퇴 예정 공무원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전문적으로 주례를 서는 일도 하고 있다. 축복도 하고 재능도 기부한다. 기업체 강연도 열심히 다닌다. 시련을 통해 알게 된 인생의 참의미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수필집도 꾸준히 출간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어떤 소재를 만날까 가슴이 뛴다는 그다. <그게 바로 사랑이야> <청산도를 그리며> <봉선화 붉게 피다> <혼자 걷는 길>에 이어 최근에는 <서해의 일출>까지 출간하며 수필가로서의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 김국현 씨는 50일간의 산방생활을 기록한 투병일기를 <봉선화 붉게 피다>라는 수필집으로 펴내 가슴 찐한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건강 상태는 어떨까? 김국현 씨는 “매사 활력 넘치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

첫째, 날마다 1~2시간 걷거나 산책을 한다. 공원도 걷고 산행을 하기도 한다.

둘째, 채소, 과일 위주의 제철식품 먹는 것을 철칙으로 한다. 지금도 금기식품은 입에도 안 댄다. 술은 14년이 지난 지금껏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다.

셋째, 스트레스 관리는 기쁘고 즐거운 일을 하면서 바로바로 푼다. 수필을 쓰는 일도 즐겁고 강연을 하고 주례를 서는 것도 큰 기쁨을 안겨준다.

넷째, 종교생활도 열심히 한다. 감사의 기도를 하고 회개의 기도를 하고 소원의 기도를 한다. 기도하면서 큰 위로를 받는다고 말한다.

김국현 씨는 “병이 오히려 약이 됐다.”며 “병이 있어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 암으로 인해 하루하루 더 열심히 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암으로 인해 인생의 깊이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런 열정으로, 그런 절실함으로 살아온 투병 14년은 인생의 황금기가 되어주었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암 환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도 희망적이다. “일병장수(一病長壽)”다. 한 가지 병이 있어 건강관리를 잘하다 보면 오히려 장수하게 된다는 ‘일병장수’의 뜻처럼 암도 건강관리의 터닝포인트로 삼으라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는 아직도 이루고 싶은 꿈이 하나 더 있다. 갑작스럽게 불치병, 난치병 환자가 되었을 때 종합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센터를 만드는 것이다. 김국현 씨는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암담했다.”며 ”그럴 때 체계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범국가적인 사회응급센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한다.

오늘도 그 꿈의 실현을 위해 두 팔 걷어붙이고 열심인 그의 앞날에 응원의 마음을 보낸다.

허미숙 기자  kunkang198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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