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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희망가] “건강 회복의 기적은 천년초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2020년 3월호 74p
   
 

백혈병 말기 이겨내고 13년~ 신연호 씨가 사는 법
“건강 회복의 기적은 천년초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2007년, 백혈병 말기 진단을 받았다.
나이 50에. 골수이식밖에 길이 없다고 했다. 4년만 더 살고 싶었다.
2012년, 백혈병 5년 완치 판정을 받았다.
기적처럼 느껴졌다. 4년만 더 살고 싶었던 꿈도 이뤄졌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20년 1월 현재,
여전히 건재하며 수많은 백혈병 환우들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고 있는 사람!
신연호 씨(63세)다. 백혈병 말기에서 기사회생해 13년째 장기 생존하며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데 그 비결은 과연 뭘까?

글 | 이은혜 기자

 

2007년에 갑자기…
숨이 턱 멎었다. 아파트 계단을 오르다 생긴 일이었다. 정신은 멀쩡한데 숨을 들이쉴 수가 없는 상황! 코로만 깔딱숨이 쉬어졌다.

행여 움직이면 깔딱숨조차 멎을 것 같아 꼼짝달싹 못한 채 몇 분이 흘렀을까? 살짝 숨이 돌아왔다.

신연호 씨는 “난생 처음 겪는 일이었다.”며 “꼼짝없이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가게 된 병원에서 들은 말은 지금도 생생하다. 간호사가 연신 미안해하면서 두 번이나 피를 뽑아갔고, 그런 다음 담당의사가 한숨을 내쉬면서 한 말은 충격이었다.

“당신은 생명체가 아닙니다.”라고 했다. “피가 끈적거려서 검사를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빨리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그 후의 일은 짐작대로다. 대학병원에서 들은 병명은 청천벽력이었다. 백혈병 말기라고 했다. 숨기지도 않고 바로 말해줬다. 

그 말을 들은 신연호 씨의 첫 마디는 “4년만 더 살게 해달라.”는 거였다. 고3 막내아들 대학 졸업은 시키고 싶었다.

골수이식밖에 길이 없어서…
너무도 갑작스러운 일이었기에 절망할 겨를도 없었다는 신연호 씨! 곧바로 입원을 했지만 백혈병 말기에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담당의사는 골수이식밖에 길이 없다고 했다.

그 말의 의미를 실감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것은 ‘절망’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구구절절 말로 다 못하지만 생사의 갈림길에서 하루하루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다. 기대와 낙담 속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롤러코스터를 탔다.

우여곡절 끝에 일치하는 골수 기증자가 단 한 명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실오라기 같은 희망이 생기는 듯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뿐! 8개월 후에나 골수 이식이 가능하다고 했을 때 포기했다. 십중팔구 힘들어 보였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단 한 명밖에 없다는 기증자가 약속을 지켰던 것이다. 신연호 씨는 “너무도 고마운 분의 도움으로 2008년 8월 골수이식을 받았다.”며 “골수 공여자를 철저히 비밀에 붙이는 바람에 고맙다는 인사도 못한 것이 지금도 마음에 큰 빚으로 남아 있다.”고 말한다.

골수이식으로 한 고비 넘겼지만…
골수이식만 받으면 되는 줄 알았다. 생사의 위험한 고비는 넘긴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신연호 씨는 “골수이식과 항암치료를 병행하며 2개월간의 치료가 끝났을 때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고 말한다.

예전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걸을 수도 없었다. 모근까지 빠진 머리는 솜털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손발톱도 모두 빠져버렸다. 얼굴은 퉁퉁 부어 사람 몰골이 아니었다.

신연호 씨는 “거동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면서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며 “그 절망의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이 기적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생환의 기적을 만들어낸 것은 누가 뭐래도…
신연호 씨는 지금껏 살아 있음이 늘 믿기지 않는다. 백혈병 말기에서 13년째 장기 생존하고 있는 것은 누가 뭐래도 기적이다.

한치 앞도 알 수 없었던 절망의 나날들! 초주검이 돼 있는 그에게 어느 날 정읍에 살던 형님이 구해다 준 것이 있었다. 전국 각지를 수소문해서 구한 약초라고 했다. 예로부터 민간처방에서 많이 쓰던 약초라고 했다. 천년초라는 약초였다. 신연호 씨는 “형님의 정성이 고마워서 삶아서 먹기 시작했는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속이 편안해졌다. 이 약 저 약 온갖 약으로 위는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잘 먹지도 못하고 소화도 못 시키는 상태였다. 그런데 천년초를 먹기 시작하자 속이 편안해지면서 음식도 조금씩 먹을 수 있게 됐다. 소화가 됐기 때문이었다.

백혈병 말기 판정을 받고도 13년째 장기 생존하고 있는 신연호 씨는 천년초를 생명의 은인으로 여긴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조금씩 조금씩 먹기 시작하면서 몸에 힘도 생기기 시작했다. 거동조차 못하던 몸이었는데 한 걸음 두 걸음 걸을 수 있게 됐다. 

그 변화가 너무도 놀라워 그때부터 날마다 천년초를 삶아서 먹기 시작했다는 신연호 씨! 한 걸음 두 걸음 걸을 수 있게 되면서 날마다 산도 오르기 시작했다. 집 주위 광교산을 날마다 올랐다.

신연호 씨는 “지금도 줄넘기 한 개를 넘겨보겠다고 일주일 내내 연습해서 비로소 한 개를 넘기고 펑펑 울었던 경험은 잊히지 않는 영상으로 남아 있다.”고 말한다.

일주일 만에 줄넘기 한 개를 넘기자 두 개, 세 개 넘기기는 쉬웠다. 그러면서 얼굴의 부기도 서서히 빠지기 시작했고, 흙빛이던 얼굴색도 차츰차츰 엷어졌다.

천년초 예찬론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신연호 씨는 천년초를 생명의 은인으로 여긴다. 2008년 골수이식으로 사경을 헤맬 때 천년초를 알게 되면서 건강 회복의 발판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2009년도부터 형님과 함께 전북 고창에 천년초 농장을 일군 것도 그래서였다. 직접 농사를 지어서 먹기 시작했다.

그런 덕분이었을까? 2012년 백혈병 5년 완치 판정을 받았다. 신연호 씨는 누가 뭐래도 천년초 덕분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천년초 예찬론자가 되어 천년초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지 10여 년 세월!
2020년 1월 현재 신연호 씨는 천년초 박사가 됐다. 아무나 붙잡고 천년초 약효를 알리고 싶어 한다.

천년초를 활용한 다양한 제품 개발에도 남다른 열정을 쏟아 붓고 있다. 먹으면 속이 편안한 천년초 냉면을 비롯해 천년초 비누, 천년초 에센스, 천년초 양념갈비까지 기발한 상품도 선보이며 하루하루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낸다.

건강은 괜찮을까? 이 물음에 신연호 씨는 “아무 이상 없이 다 좋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한다.
사실 2012년 백혈병 5년 완치 판정 후 병원에는 일절 가지 않았다는 그다. 건강은 자신 있었다.

천년초를 알게 되면서 고질병이던 위장병도 나았고, 컨디션도 늘 좋았다. 2019년 11월, 7년 만에 병원에 간 것도 가족들의 성화 때문이었다. 한 번 체크해보라고 하도 성화여서 어쩔 수 없이 종합검진을 받았지만 결과는 별 것 없었다. ‘이상무’였다. 피도 깨끗하다고 했다.

신연호 씨는 “당연한 결과라고 여겼다.”며 “천년초를 대중화시키기 위해 두 팔 걷어붙이고 열심인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한다. 누가 뭐래도 백혈병 말기에서 13년째 장기 생존하는 것은 천년초와 무관하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오늘도 천년초 농사를 짓고 천년초 제품을 만들며 천년초 알리기에 여념이 없는 신연호 씨!
그런 그는 집집마다 천년초를 키워서 전 국민 모두가 먹는 세상을 꿈꾼다. 우리 땅에서 자라는 토종 선인장 천년초는 영하 20도 혹한에도 잘  자라고 병충해에도 강해 농약도 비료도 필요없어 국민 건강에 효자식품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 꿈을 위해 오늘도 두 팔 걷어붙이고 열심인 그에게 응원을 보낸다. 

건강다이제스트  kunkang198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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