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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희망가] “아웃풋(Output)이 잘 되게 날마다 움직입니다”2019년 09월호 22p
   
 

췌장암과 친구처럼 10년의 기록
이정복 씨가 사는 법 

지난 7월 5일 카톡으로 보내온 메시지 하나!
“서울에 왔다.”며 식사나 같이 하자고 했다. 반가웠다. 일 년 만의 안부였다. 그동안 SNS를 통해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운 소식을 접한 터여서 꼭 만나고 싶었다. 히말라야로 트레킹을 다녀왔다며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유럽으로 트레킹을 다녀왔다며 그림을 올리기도 했다.
마라톤 42.195km를 완주했다며 두 팔 벌려 포효하는 모습을 올리기도 했다.  그렇게 올린 사진 한 장 한 장에 서려 있는 땀과 눈물을 너무도 잘 알기에 가슴이 먹먹했다. 2010년, 췌장암 진단을 받고 홀로 지리산으로 들어갔던 이정복 씨(64세)가 올린 사진이었기 때문이었다. 기억력 좋은 건강다이제스트 독자라면 2013년 11월호에 소개된 그를 기억하는 사람도 더러 있을 것이다.
지리산 산속에 집을 짓고 췌장암도 꿋꿋하게 이겨내고 있는 주인공으로 소개된 적이 있다. 그때의 인연으로 일 년에 한 번쯤 메신저로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으며 지낸 지 6년! “오래 살고 있는 기념으로 식사나 하자.”는 그를 2019년 7월,
서울 종로에서 다시 만났다.  
글│허미숙 기자

 

우려가 환호로~
2013년 지리산으로 이정복 씨를 찾아갔을 때만 해도 조심스러웠다. 마음 한 구석에 도사린 불안감도 있었다. 췌장암 진단을 받은 지 3년째! CT상 췌장에 1.5cm 크기의 암이 존재하고, 양쪽 신장에 2개, 1개의 시스트(종양)가 있으며, 간의 7분절 돔 구역에 1cm 크기의 시스트(종양)가 여전히 자리 잡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술도 항암치료도 하지 않은 채 지리산에 집을 짓고 살고 있는 모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 영상으로 남아 있다. ‘행여 생사를 건 투병에 스트레스가 되면 어쩌나?’ 노심초사하면서 취재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로부터 6년이 흘렀다. 그때의 인연으로 SNS 친구 사이가 되면서 간간이 근황을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2015년에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라운드 서킷과 푼힐 간드룩  코스를 갔다 왔다고 했다.

마라톤은 이정복 씨의 아웃풋 실천법 중 하나다.

2016년에는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2패스를 갔다 왔다고 했다. 2016년에는 마라톤도 뛰기 시작했다고 했다. 봄에는 동아마라톤, 가을에는 춘천마라톤을 완주했다고 했다. 2017년에는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했다고 했다. 2018년에는 자전거를 타고 영국을 다 돌고 아일랜드까지 돌고 왔다고 했다.

‘2019년에는 또 어떤 일로 놀라게 할까?’ 기대하고 있던 중 “식사나 같이 하자.”는 카톡 메시지를 받고 지난 7월 서울에서 만난 이정복 씨는 아쉬움부터 토로했다.

“원래 계획은 올 6월에 스위스, 프랑스, 이탈리아 3개국에 걸쳐 있는 알프스와 돌로미테로 트레킹과 자전거 여행을 떠날 예정이었는데 발목 인대가 파열되는 바람에 가지 못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6년 만에 만난 그에게서 궁금한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무나 못 하는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질 않나, 아무나 못 하는 국토 종주를 자전거 타고 하질 않나, 심지어 세계 각지로 자전거 하나로 누비고 다니질 않나…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을 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통사람도 쉽지 않은 일을 거뜬히 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중증질환자로 분류되는 사람이.

가벼운 식사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궁금해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비결이 뭐예요?” 생존율 낮기로 악명이 높은 췌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도 안 하고 10년째 장기 생존하며 전무후무한 기록을 만들어가고 있는 노하우가 너무도 궁금했다.
이 물음에 이정복 씨는 “다들 이렇게 오래 살 줄 몰랐다며 대놓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며 “그저 하루하루 인풋(Input)보다 아웃풋(Output)을 실천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말한다.

‘인풋’과 ‘아웃풋’ 뭐길래?
췌장암 진단을 받고 10년째 장기 생존하며 새로운 전설을 만들어가고 있는 이정복 씨! 그런 그가 장기 생존의 비밀로 소개한 열쇳말은 ‘인풋(Input)’과 ‘아웃풋(Output)’이다. 인풋(Input)이란 무엇일까? 아웃풋(Output)이란 무엇일까?

이정복 씨가 소개하는 인풋은 우리 몸속에 투입하고 넣는 것이다. 이정복 씨가 소개하는 아웃풋은 배설하고 배출하는 것이다. 이정복 씨는  “인풋보다 아웃풋이 잘 되게 하는 것을 건강 철칙으로 삼았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4가지가 잘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 대변이다.
둘째, 소변이다.
셋째, 숨쉬기다.
넷째, 땀이다.

이정복 씨는 “이 네 가지가 365일 잘 되게 하면 건강의 기본은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한다.  이 네 가지가 원활히 이뤄지면 우리 몸의 대사기능이 정상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물론 그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기는 했다. 췌장암이라는. 따라서 100% 정상으로 되돌릴 수 없음도 알았다. 그러나 현상 유지만 되어도 남는 장사라고 여겼다.

이정복 씨는 “2013년도부터 건강관리의 키워드로 삼은 것은 아웃풋이었다.”며 “대변이 잘 나오게 하고 소변이 잘 나오게 하고 숨쉬기를 잘하고 땀이 잘 나오게 하면서 해외 트레킹도 갈 수 있었고, 마라톤 완주도 가능했으며, 백두대간 종주도 달성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아웃풋’이 잘 되게~
실천 강령은 크게 2가지

대변, 소변, 숨쉬기, 땀…이 네 가지만 잘해도 건강의 기본은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정복 씨! 실제로 그는 이 네 가지가 선순환 구조로 돌아가면서 해외여행도 갈 수 있었고, 마라톤도 뛸 수 있었다고 믿고 있다. 이 같은 몸을 만들기 위해 그가 들인 노력은 말로 다 못 한다. 목숨 걸고 실천한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잠자는 시간 빼고 항상 움직이기
햇빛이 쨍쨍한 날은 무조건 밖으로 나갔다. 햇빛이 쨍쨍하지 않은 날도 무조건 밖으로 나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밖으로 나갔다. 자는 시간 외에는 절대 눕지 않았다. 와사입생(臥死立生)을 믿었다. 누우면 죽고 움직이면 산다고 여겼다.

병문안도 다니고 문상도 다니면서 날마다 움직였다. 그 사람들을 보면서 역지사지했다. 타산지석으로 삼았다.

트레킹을 하고 자전거캠핑을 하면서 날마다 움직였다. 자전거 타고 국토 종주를 하면서 그랜드슬램도 했다. 히말라야로 유럽으로 트레킹을 하고 자전거캠핑을 하면서 끊임없이 몸을 움직였다.

봄에는 동아마라톤, 가을에는 춘천마라톤, 수시로 하프마라톤에 참가했고, 그러기 위해 아침마다 5~7km는 꼭 뛰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걷고 뛰었다. 날마다 밖으로 나가 몸을 움직였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왜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말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좋아지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살기 위한 투쟁이었다. 아웃풋이 잘 되게 하기 위해서였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티끌 모아 태산이듯이, 먼지가 쌓이듯이 날마다 걷고 달리면서 몸을 움직였다.

이정복 씨는 “몸을 움직여서 아웃풋이 잘 되게 어마어마한 시간을 쏟아 부었고, 목숨 걸고 실천했다.”고 말한다. 그것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눈만 뜨면 밖으로 나가서 몸을 움직인다.

이정복 씨는 국토 종주는 물론 유럽, 히말라야 등으로 트레킹을 다니며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고 있다.

둘째, 잘 먹기 대신에 잘 골라 먹기
아무 거나 절대 먹지 않았다. 먹거리 하나도 잘 골라 먹었다. 잘 먹기 대신에 잘 골라 먹기를 실천했다. 가공식품, 인스턴트식품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노지에서 자란 것, 텃밭에서 가꾼 것 위주로 먹었다. 함부로 먹어서 몸에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미 몸은 망가져 있는 상태였다. 붕괴가 돼 있는 상태였다.

잘 골라 먹기는 몸에 충격을 덜 주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아침 10시, 오후 5시에 하루 두 끼 식사를 했고 그 생활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특별히 챙겨 먹는 것도 없다. 토마토수프를 먼저 먹고, 샐러드 한 접시, 현미잡곡밥 조금이 전부다. 식사는 꼭꼭 씹어서 천천히 목넘김을 하고, 양은 적게 먹는 소식을 실천한다.

이정복 씨는 “아웃풋이 잘 되게 하려면 절대로 함부로 먹어서도 안 되고, 많이 먹어서도 안 된다.”며 “철저히 골라먹고, 철저히 따져서 먹는다.”고 말한다.

췌장암과 친구처럼
살아온 지 10년!

결코 쉽지 않았던 길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힘이 드는 일이기도 하다. 한 시간 한 시간을 버텼고,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온 10년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소화기능은 시원치 않고, 각종 통증, 당뇨합병증, 말초신경합병증, 류마티스 등 기저 증상도 갖고 있다. 백혈구 수치도 2000대로 정상인의 5000대보다 훨씬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정복 씨는 지금 해피하다고 말한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말한다.

일상생활을 거뜬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라톤도 뛰고 세계로 트레킹도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매월 한 차례 췌장암 환우보호자 길라잡이 모임에서 6~8시간 논스톱 강의도 7년째 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보다 더 많이 활동하고, 가고 싶은 데 다 가는 데 무얼 더 바라겠느냐고 반문한다.

앞으로 언제 어떻게 될지 미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정복 씨는 걱정하지 않는다. 지금처럼 살면 된다고 믿고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살기 위해 움직일 것이고, 셀 수 없이 많은 산행을 앞으로도 할 것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혼자서 자전거 라이딩을 할 것이고, 동짓날 달빛 아래서 자전거 캠핑도 다시 할 생각이다.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면 몸무게를 재고 혈압을 재고 혈당을 재고 심박수를 재면서 하루하루 몸 상태부터 체크한다는 이정복 씨! 그 일이 끝나면 무조건 밖으로 나간다. 하루 종일 몸을 움직인다. 그것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 길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암 환우들에게 당부하는 말도 하나다. “아웃풋을 위해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대소변, 호흡, 땀이 정상적으로 배출되도록 서서히 몸을 움직이라는 것이다. 날마다 무조건 밖으로 나가서 슬슬 걷기부터 시작해야 하고, 동네방네 다 있는 운동시설을 활용하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생명의 불씨도 함께 살아날 수 있다고 당부한다.

 

건강다이제스트  kunkang198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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