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건강다이제스트 생생희망가
[생생희망가] C형 간염→간경화→간암 사슬 끊어내고 10년! 김철규 씨 인생 역전기2019년 02월호 26p

【건강다이제스트 | 이은혜 기자】

“암을 이기려면 스스로 의사가 되어야 합니다”

20대 후반, C형 급성간염 진단을 받았다. 헌혈을 하면서 주사바늘을 통해 감염된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별다른 증상이 없어 잊고 살았다. 그런데 그것이 화근이 될 줄 몰랐다. 40대 후반, 간경화에 간암 진단까지 받았다. 2.8cm 크기라고 했다. 수술은 안 된다고 했다. 병원에서 해줄 것이 없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거뜬히 기사회생한 주인공이 있다. 김철규 씨(56세)다. C형 간염에서 간경화, 간암까지 착착 진행되던 죽음의 사슬을 끊어내고 10년째 장기 생존하고 있는 그를 만나봤다.

C형 간염 진단을 받았지만…

예비군 훈련을 받으러 갔다가 갑자기 체한 것처럼 복통이 일어나 병원에 갔더니 C형 급성간염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김철규 씨는 “그게 뭔데요?” 했다고 한다. C형 간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1990년대만 해도 C형 간염은 잘 모르는 병명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도 특별히 조심하지 않았다. 직장 회식에서 술잔도 마다하지 않았다. 다만 술을 마신 다음 날은 우루사 같은 간 보호제를 사서 먹기는 했다. 6개월마다 하는 정기체크에서 별다른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잊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직장에서 하는 건강검진에서 간에 이상 소견이 있으니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김철규 씨는 “그런 판정을 받고도 아는 병이라며 병원에도 가지 않았다.”고 한다. C형 간염 진단 후 6개월에 한 번씩 정기체크를 하면서 알게 된 건 한동안 술을 안 마시고 검사를 하면 간수치가 정상으로 나오고, 술을 많이 마시면 간수치가 높게 나온다는 거였다. 그래서 ‘술만 절제하면 되겠지.’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30대 중반 직장에 다니면서 투잡으로 가구회사도 경영했는데 그것이 잘 안 되면서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김철규 씨는 “월급에 차압까지 들어오자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며 “그때부터 식당 허드렛일부터 건설현장 막노동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니 건강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 빚더미에 눌려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조차 버거운 상황이었다. 김철규 씨는 “한 번 궤도를 이탈하니 끝없는 추락이 이어졌다.”며 “거의 폐인이 되어 술로 세월을 보냈다.”고 말한다.

그 후환은 그리 오래지 않아 발톱을 드러냈다. 막노동까지 해가며 빚도 거의 청산하고 다시 재기를 꿈꾸고 있던 40대 후반 때였다. 정확히는 47세 때였다.

김철규 씨는 “누나의 건강검진을 따라갔다가 병원에 간 김에 복부초음파 검사를 했는데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고 말한다.

간암이라고 했다. 너무도 확정적으로 말해서 대꾸조차 못했다. 믿기지도 않았다. 암에 걸리면 바로 죽는 줄 알았다. 누워서 끙끙 앓아야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겉으로 봐서는 멀쩡한데 암이라고 했다.

김철규 씨는 “그제서야 C형 간염의 무서움을 실감했다.”며 “20년간 소리 없이 암의 싹을 틔우고 있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고 말한다.

2.8cm 암세포는 수술도 못 하고…

간암 진단을 받고 부랴부랴 대학병원 암센터로 가서 정밀검사까지 받았지만 간암이라는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2.8cm 크기로 간에 생긴 악성 신생물이라고 했다.

그런데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았다. C형 간염도 있고, 간경화도 제법 진행된 상태라 간 절제 수술로 암세포를 제거할 수는 없다고 했다. 게다가 종양 부위가 수술하기에 애매해서 절제술을 해도 생존가능성은 낮다고 했다. 요약하면 수술도, 심지어 색전술도 할 수 없다는 거였다. 한마디로 병원에서 해줄 것이 없다는 말이기도 했다.

김철규 씨는 “현대의학으로는 살 길이 없다는 말과 같았다.”며 “담양 무등산 산자락에 위치한 무등산생태요양병원을 찾게 된 것도 그래서였다.”고 말한다.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암 환자들이 면역 회복 치료를 할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어서였다.

암요양병원 행… 그리고 한 줄기 희망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병원에서 해줄 것이 없다는 냉엄한 현실! 결혼도 안 한 처지라 오로지 혼자 감당해야 할 절망의 무게!

그런 김철규 씨에게 암요양병원은 구원의 빛이 되어주었다고 말한다. 비로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투병 밑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김철규 씨는 “요양병원에서의 생활은 생사도 내려놓고 그저 오늘 주어진 하루 최선을 다해 살자 그 생각만 했다.”고 한다. 이때 그가 자신만의 투병 플랜으로 실천했다는 ‘김철규표 항암생활’은 다음과 같다.

▲김철규 씨는 절대 무리한 운동은 하지 않는다. 등산로 대신 혼자 천천히 숲길을 걷는 운동을 주로 한다.

1. 새벽 4시면 일어나 풍욕과 등산하기

요양병원을 나서면 펼쳐져 있는 편백숲에서 옷을 벗어서 허리에 묶고 무등산 자락의 꼭대기까지 등산을 했다. 풍욕도 하고 운동도 하기 위해서였다. 2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했던 일과다.

2. 요로법 실천하기

새벽 4시에 일어나 산에 오르기 전 자신의 소변을 먹는 요로법도 날마다 실천했다. 소변에서 혈청을 뽑아서 약제로 만든다는 말을 들어서였다. 간에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3년 동안 실천했다.

3. 식단은 자연식 위주로 먹기

샐러드바를 중심으로 한 채식 위주의 식사를 했지만 살코기나 생선 등도 가리지 않고 먹었다. 다만 아침 6시에 국산콩으로 만든 두유와 저녁에 여러 가지 채소와 과일을 갈아서 만든 해독주스는 꼭꼭 마셨다.

4. 명상, 요가, 웃음치료, 노래교실 등 다양한 항암프로그램 실천하기

배꼽 잡고 웃으면서 춤도 추고, 홀로 청일점이었지만 꿋꿋하게 요가교실에서 요가도 하면서 신나게 살려고 노력했다.

5. 면역력 회복 치료도 다양하게 활용하기

화학적 성분이 안 들어간 미슬토요법, 비타민요법 등 다양한 면역력 회복 치료도 병행했다. 특히 간은 소화기 계통과 연결된 부분이 많아서 면역력 회복은 늘 힘든 과제였다.

김철규 씨는 “이런 생활을 한 지 1년 3개월이 흘렀을 때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전남대병원과 서울대병원 두 곳에서 크로스 체크를 해왔던 그였다. 그런데 두 병원의 검사에서 모두 “영상학적으로 암이 안 보인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영상학적으로 종양이 안 보인다고 해서 암이 나은 것은 아님을.

김철규 씨는 “암 치료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을 했다.”며 “그래서 휴대폰도 없애버리고 전이·재발을 막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노력도 시작했다.”고 말한다.

전이 재발을 막기 위해 했던 것들

‘암으로 죽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영상학적으로 암이 안 보인다고 했을 때 든 생각이었다. 열심히 노력하면 암도 얼마든지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였다. 더 열심히 암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공부해서 알게 된 사실은 하나하나 실천해가면서 몸 상태를 체크했다.

김철규 씨는 “그럴수록 점점 더 살 수 있다는 희망은 뚜렷해지더라.”며 “암 환자들도 반드시 공부해야 한다는 걸 그때 실감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많았다.

첫째, 날마다 하던 등산 대신 혼자서 숲속길을 걷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과 함께 등산을 하게 되면 속도를 맞추기 위해 무리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아무리 좋은 운동도 무리하면 오히려 해가 된다는 걸 알았다. 몸속에 활성산소가 많이 생겨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혼자 천천히 숲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면서 숲길을 걸었다.

둘째, 먹거리에서 특별히 챙겨 먹기 시작한 것은 마늘과 브로콜리였다. 모든 요리에 마늘을 넣어서 먹었다. 마늘의 항암효과를 믿어서였다. 생것으로도 먹고 익혀서도 먹었다. 브로콜리도 신경 써서 챙겨먹은 식품이었다. 삼시세끼 빠뜨리지 않고 먹었다. 그것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셋째, 기질적인 성향도 바꾸었다. 급한 성격을 고치려고 노력했다. 암을 이겨낸 사람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암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거였다. 조급해하지도 않았다는 거였다. 음악을 들으며 산책을 하고 언제나 평온한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했다는 걸 알았다. 또 일희일비하지도 않았다. 종양이 조금 커졌다고 해서 절망하지 않았고, 종양이 조금 작아졌다고 해서 해이해지지도 않았다.

마음이 평화로우면 암도 성장을 멈춘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날마다 더 열심히 명상을 하고 요가도 하면서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이 같은 노력 덕분이었을까? 김철규 씨는 현재 10년째 장기 생존자로 모두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는 사람이 됐다. 2018년 12월 현재 그의 근황을 알아봤다.

2018년 12월 현재 김철규 씨는…

무등산 산속에 위치한 암요양병원에서 만난 김철규 씨는 “10년간 많은 것이 변했다.”고 말한다. 여전히 암요양병원에서 지내고 있지만 지금의 그의 처지는 180도 달라졌다. 암 환자로서가 아니라 암 환자들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그가 바라는 것은 한 가지뿐이다. 자신의 경험이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암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10년 전 자신도 겪었던 암 환자들의 막막함을 너무도 잘 알기에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상담전화에도 싫은 내색조차 안 한다.

늦은 결혼도 했다. 암 환자라는 걸 알면서도 황달로 혼수가 왔을 때 대소변까지 받아낸 지금의 아내 박애란 씨를 만나 알콩달콩 행복하다.

건강 상태는 어떨까? 김철규 씨는 “2018년 11월 서울대병원에서 한 체크에서 모든 것이 정상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말한다. 간암표지자 검사에서도 정상으로 나오고, C형 간염은 비활동성으로 돌아섰고, 간경화는 진행이 멈춰있는 상태여서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던 것이다.

▲간암을 이겨낸 김철규 씨는 암에 대해 공부하고 암이 싫어하는 생활습관을 유지하면 반드시 살 길이 열린다고 강조한다.

김철규 씨는 “지금 주어진 행복이 꿈만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행복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누고 싶어 한다. 그래서일까? 암 환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분명하다. 암은 결코 불치병이 아니니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비록 난치병이지만 내가 어떤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이길 수 있는 병이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암에 대해 의사보다 더 많이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자기 목숨이 달려 있으니 못할 바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 분명 살 길이 열릴 것이라고 말하는 김철규 씨는 자신이 증거라며 절대 희망을 버리지 말 것을 당부한다.

이은혜 기자  kunkang1983@naver.com

<저작권자 © 건강다이제스트 인터넷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은혜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여백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1
전체보기
  • 건강다이제스트 2019-02-15 14:48:21

    월간 《건강다이제스트》에는 연락처 공개를 허가하신 경우 170p 알림판 코너에 사레자 연락처를 게재하고 있습니다. 관련문의가 있으실 경우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전자책 판매: https://ridibooks.com/v2/Detail?id=2230000076   삭제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