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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희망가] 느닷없이 임파선암도 의연하게~ 서원욱 씨 체험담2018년 07월 건강다이제스트 솔바람호 74p

【건강다이제스트 | 이은혜 기자】

“위기는 새로운 기회… 더 값지게 살 수 있어요”

어느 날 갑자기 걸음을 걷기가 불편해지면서 생사의 기로에 섰던 서원욱 씨(64세)!

이럴 수도 있나 싶었다. 병명도 어려웠다. 미만성 대B-세포림프종이라고 했다. 임파선암의 일종이라고 했다. 하루아침에 느닷없이 병명도 까다로운 임파선암 환자가 되면서 목숨을 건 치열한 사투를 벌여야 했던 그가 오늘은 인생 2막을 준비하며 들떠 있다.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침 출근길에 느닷없이…

여느 날과 다름없는 아침 출근길! 걸음을 걷기가 불편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갑자기 그랬다.

‘운동을 안 해서 그런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정형외과를 찾았던 서원욱 씨는 “퇴행성관절염 때문인 것 같다.”는 말을 들었고, 일주일치 약 처방을 받고 병원문을 나섰다고 한다.

그런데 다음 날, 아예 출근조차 할 수 없었다. 걷지를 못했다. 곧바로 정형외과에 가서 입원을 했다. 60년 넘게 살아오면서 생전 처음 해본 입원! 생전 처음 입어본 환자복! 생전 처음 누워본 병상! 생전 처음 맞아본 링거! 환자복도 입었으니 아내에게 인증샷을 찍어달라고 부탁도 했다.

그렇게 입원을 하고 날마다 이것저것 검사도 했다. 그런데 8일이 지나도 확실한 병명이 나오지 않았다. 정형외과에서는 “허벅지 근육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면서 근육이완제 주사만 계속 처방했다고 한다.

그러자 점점 더 다리의 힘은 빠졌고, 휠체어가 아니면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게 됐다. 결국 입원 9일 만에 소견서를 들고 대학병원 정형외과를 찾았던 서원욱 씨는 황당한 말을 듣게 된다.

“정형외과에서 찍은 CD를 갖고 갔는데 그것을 보자마자 5분도 안 돼 하는 말이 ‘고관절에 이상이 있는데 단순한 이상은 아닌 것 같다.’면서 당장 입원해서 종합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 후의 일은 지금 생각해도 모골이 송연해진다. 세상에 그런 고통이 있을 줄 몰랐었다.

서원욱 씨는 “멀쩡히 잘 살다 하루아침에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더라.”며 “정말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는 걸 실감했다.”고 말한다.

어렵게 찾아낸 병명은 ‘미만성 대B-세포림프종’

걷지도 못하고 병명도 모른 채 대학병원으로 갔던 서원욱 씨는 2017년 4월 12일 고관절 인공치환술을 받았다고 한다. 고관절에 분명히 이상이 있으니 인공치환술부터 하자고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비로소 정확한 병명도 나왔다. 고관절 조직을 적출해서 조직검사를 한 후였다.

“처음에는 하도 어려워서 잘 못 알아들었어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생소한 말이었어요. 미만성 대B-세포림프종이라고 했어요. 임파선암의 일종이라고 하더군요.”

상황은 별로 좋지 않았다. PET-CT 결과 암세포는 이미 전이가 된 상태라고 했다. 왼쪽 고관절, 오른쪽 고관절, 위, 복부 등 4곳에 임파선암이 발견됐다는 거였다.

게다가 나이가 60세 이상이라는 점, 두 군데 이상 전이가 됐다는 점, 임파선 외에 다른 곳에도 전이가 돼 고위험군에 속한다고 했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서원욱 씨는 “담담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회진 돌 때마다 담당의사한테 “어떻냐?”고 물어보면 “생명에는 지장 없어요.” 했던 것이다.

하지만 항암치료를 위해 혈액종양내과로 이관이 됐을 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는 그다.

혈액종양내과로 이관되자 담당의사의 말은 달랐다.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말 대신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했던 것이다.

비로소 암 환자라는 걸 실감했다는 서원욱 씨! 하지만 독실한 천주교인인 그는 “이 또한 주님의 뜻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 서원욱 씨는 고위험 임파선암에도 굴하지 않고 운동과 식이요법 등을 통해 암세포 완전 소멸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항암치료 6차 만에 ‘완전 관해’

이미 전이가 돼 임파선암 고위험군으로 분류됐던 서원욱 씨는 담당의사로부터 “항암치료 6회 처방”을 받았다. 2017년 4월 28일, 첫 항암치료를 시작하면서 그가 한 다짐은 하나였다. ‘꼭 이겨내리라.’

하지만 독한 항암치료 앞에서 그 다짐은 무색해졌다. 온몸의 뼈마디가 녹아내리듯, 온몸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듯 고통스러웠다. 유난히 빨간색이 섬뜩했던 항암제를 맞자 소변 색깔까지 빨갛게 나와 기겁을 하기도 했다.

서원욱 씨는 “묵주기도조차 할 수 없었다면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한다. 빨간액 한 방울이 들어가서 임파선암을 없애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그것이 통했던지 1차 항암치료는 잘 됐다고 했다. 퇴원을 해도 좋다는 말까지 들었다. 입원한 지 40일 만에 비로소 병원 문을 나섰을 때의 그 기분! 서원욱 씨는 “그날의 기쁨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의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날로 기억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뿐! 6차까지 이어진 항암치료는 고통스러웠다. 독한 항암치료로 온몸은 만신창이가 돼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기 위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는 서원욱 씨다.

첫째, 억지로라도 먹었다. 음식냄새조차 맡을 수 없었지만 살려면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날마다 콩나물국, 미역국, 북어국을 끓이고 식혜까지 직접 만들어야 했던 아내에게 많이 고맙다.

둘째, 날마다 운동했다. 항암치료를 하고 나면 초주검이 되었지만 지팡이를 짚고서도 운동을 했다. 전주천 주변을 걸으며 암의 발호를 막기 위해 노력했다.

셋째, 묵주 기도를 늘 했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겼다. 그러면 어지러운 마음도 홀가분해지고 짧은 평온감도 찾을 수 있었다.

그런 노력 덕분이었을까? 3차 항암치료가 끝났을 때 담당의사가 놀라워했다. 95% 정도 암세포가 소멸됐다고 했던 것이다. 위에만 조금 남아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은 “완전 관해의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했다.

그 말은 적중했다. 2017년 9월, 6차 항암치료가 끝났을 때 ‘완전 관해’라는 말을 직접 듣게 됐던 것이다.

▲ 임파선암과의 사투를 인생의 터닝포인트로 삼은 서원욱 씨는 천호성지 천주교 신앙문화유산 해설사로 주말마다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자가 조혈모세포 이식은 또 다른 위기

서원욱 씨는 “6차까지 항암치료를 하면서 그 고통은 말로 다 못 하지만 암세포가 없어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새로 태어난 것 같았다.”고 말한다.

6차 항암치료로 완전 관해라는 판정까지 받았지만 재발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조혈모세포 이식을 하자고 했을 때 서원욱 씨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고 한다. 다행히 자가 조혈모세포 이식도 가능하다고 하여 한껏 고무되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조혈모세포 이식은 6번의 항암치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거였다. 온몸의 살점이 뚝뚝 떨어져 나가는 고통보다 더했다.
서원욱 씨는 “조혈모세포 이식을 위해 무균실에 들어가기 전 공증사무실에 가서 공증까지 했다.”고 말한다.

“이식하다 무슨 일이 생겨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공증이었어요. 아내와 함께 공증을 받으러 가던 그 길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

그렇게 공증을 하고 하얀 비닐 커튼이 공포감을 자아내던 무균실로 들어갔던 그는 다행히 제2의 생일날도 갖게 됐다. 조혈모세포 이식을 했던 2017년 12월 6일은 서원욱 씨가 제2의 생일로 정한 날이다. 조혈모세포 이식까지 그 처절했던 과정은 구구절절 말로 다 못하지만 어쨌든 그는 ‘조혈모세포 이식 성공’의 주인공이 됐던 것이다.

2018년 5월 현재 서원욱 씨는…

“지금은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체크만 합니다. 혈액검사 결과는 늘 ‘아주 좋다’고 합니다. 조혈모세포 이식도 잘 돼서 이제는 담당의사도 ‘진인사 대천명’이라고 하네요.”

병원에서 할 것은 다 했으니 하늘의 뜻에 맡겨 놓고 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 또한 하늘의 뜻에 따라 살려고 노력한다.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산다. 그런 그가 건강을 위해 특별히 실천하고 있는 것도 있을까? 이 물음에 서원욱 씨는 지금도 3가지는 변함없이 실천한다고 말한다.

1. 날마다 운동한다.

하루 평균 1~2시간은 꼭 운동을 한다. 아침 스트레칭부터 걷기, 실내자전거 타기 등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날마다 운동은 한다.

2. 먹거리도 신경 쓴다.

먹거리의 철칙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침에 사과 반쪽, 점심에 토마토 데쳐 먹기, 저녁에 바나나 한 개 먹기다. 그래서 자신을 일러 ‘날마다 사과 깎는 남자’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3. 주말마다 봉사활동을 한다.

덤으로 주어진 삶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축복을 다른 사람에게도 나눠주고 싶다.

천호성지 천주교 신앙문화유산 해설사로 주말마다 봉사활동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앞으로의 삶은 아낌없이 베풀며 살고 싶고,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오늘도 서원욱 씨의 하루하루는 감사와 기도로 꽉 차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암과의 사투를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삼아 새로운 인생 2막을 열고 있다. 감사하는 삶, 봉사하는 삶을 인생의 최고 기쁨으로 여긴다.

그런 그가 전주 시청 앞뜰 벤치에서 긴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당부한 말은 하나다.

세상에 이기지 못할 시련은 없다는 것이다. 암도 마찬가지다. 암이라는 생사를 위협할 적수를 만나도 포기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새로운 삶의 활로를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믿고 파이팅하기를 신신당부한다.

이은혜 기자  kunkang198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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