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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확대경] 다중인격 도대체 왜?

【건강다이제스트 | 이기옥 기자】

【도움말 | 한국인지행동심리학회 박소진 심리학자】

D.I.D, 내 속에 여럿 있다?!

드라마가 아니었다면 평생에 한 번 들어볼까 말까 했을 ‘D.I.D’(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 하지만 이제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이것이 ‘해리성 정체감 장애’ ‘다중인격’을 의미한다는 것을 안다. ‘해리성 정체감 장애’라는 말은 우리말로도 그리 쉽지는 않다. 제대로 한 번 알아보자.

<영화 속 심리학>의 저자이자 인지행동지도사 등을 양성하는 한국인지행동심리학회 박소진 심리학자는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이해하려면 먼저 ‘해리성 장애’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해리(Dissociative)’는 ‘분리’ ‘분열’을 의미한다. 극심한 스트레스나 외상을 입으면 사람은 그것이 자기 일이 아닌 것처럼,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느끼기도 하는데 이것이 일종의 분리, 즉 해리이다. 이런 면에서 해리 현상은 일종의 방어기제 성격을 띤다.

이런 경험이 일시적이고, 의식이나 기억, 정체감 등에 영향을 끼치지 않으면 문제가 없지만, 고통과 문제를 초래하면 해리성 장애가 된다. 박소진 심리학자는 “이처럼 해리성 장애는 통합적인 기능(의식, 기억, 정체감, 환경에 대한 지각)의 붕괴로 생기는 증상”이며 “해리성 기억상실 장애, 해리성 정체감 장애, 이인화·비현실감 장애 등이 이 장애에 포함된다.”고 말한다. 시쳇말로 ‘멘붕’이라고 하는 멘탈 붕괴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생기는 증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해리성 장애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기억’이다. 드라마 <킬미 힐미>에서 7개의 인격을 지닌 차도현(지성)은 ‘신세기’나 ‘안요나’ 등의 인격이 활성화되었을 때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자기 인격으로 돌아와 눈을 떴을 때 자신이 거의 입지 않는 옷을 입고 있거나 낯선 장소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즉 한 인격이 활성화되면 다른 인격들은 잠시 활동을 멈추게 되고 그 기간의 기억을 잃게 되는 해리성 기억상실을 경험하는 것이다.

박소진 심리학자는 “기억은 한 사람의 정체감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라며 그 이유로 “기억을 잃으면 자신이 누구인지 그 정체성이 매우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D.I.D는 한 사람 안에 여러 정체감이나 인격이 존재하는 장애로 다양한 정체감, 기억, 의식 등의 통합에 실패해 각각의 장애가 독립적이어서 서로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거나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D.I.D, 치료는?

<킬미 힐미>의 차도현은 어린 시절 부모의 학대와 방관 때문에, <하이드 지킬, 나>의 구서진은 어린 시절 겪은 납치 사건으로 인해 또 다른 인격들이 나타난 것으로 드라마에서 묘사된다.

이처럼 극심한 스트레스나 과거 어린 시절의 심한 학대가 D.I.D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박소진 심리학자는 “해리성 정체감 장애는 매우 특이하고 기이한 정신장애로 극히 드문 장애인데, 이 장애로 진단된 사람들의 공통점은 어렸을 때 심각한 신체적, 성적 학대를 경험했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때 사람들 대부분은 ‘이건 사실이 아닐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대개는 여기에서 그친다. 그런데 D.I.D는 이런 고통스러운 사실을 다른 정체감의 한 부분에 투사한다. 그리고 그 심리적 고통의 실체를 자신과 다른, 분리된 것으로 경험하는 특이한 현상을 보인다.

이토록 특이하고 기이한 정신장애인 D.I.D, 치료는 가능할까?

박소진 심리학자는 “이들의 치료에는 정신 역동적 치료, 최면치료, 약물치료 등이 사용되며, 일차적으로 기억을 회복하고 하위 인격들을 통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한다.

일부 연구결과에서는 높은 치료 성공률이 보고되기도 했지만, 환자 스스로 치료에 저항적일 수도 있다고 한다. 치료를 위해 하위 인격들을 통합하는 것이 하위 인격들 각각의 처지에서 보면 그 인격들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킬미 힐미>에서 차도현의 하위 인격인 신세기가 통합치료로 자신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치료에 저항했듯이 말이다.

왜 다중인격인가?

정신질환이 드라마의 주된 소재로 등장하고 그것이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고 있다. 물론 멋진 외모로 매력 넘치는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들과 재미를 더하는 달달한 로맨스 덕분이다. 또한 이 덕분에 D.I.D라는 질환에 관심도 쏠리고, 이밖의 다른 정신질환에 대해서도 비교적 열린 마음으로 이해할 여지도 생긴 듯하다.

하지만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다 보니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D.I.D가 되고 싶다는 청소년들도 일부 있다. 이러한 반응에 대해 박소진 심리학자는 “D.I.D는 단순한 특이 현상이 아니라 심각한 학대로 인해 발생한 정신장애이며, 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인들에게도 심각한 고통과 상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한다.

그동안 질환을 소재로 했던, 소위 ‘메디컬 드라마’들은 주로 화타와 같은 명의가 등장하는 외과 위주의 드라마였다. 그런데 최근에는 화타 같은 명의를 내세우기도 어렵고, 극적인 치료 성공 사례도 보여주기 힘든 정신질환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늘어나는 추세다. 누구나가 편안하게 시청할 수 있는 대중성을 미덕으로 삼아야 할 드라마가 예전과 달리 정신질환을 소재로 삼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소진 심리학자는 “사회가 복잡해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과중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이 각자가 가지고 있던 내적 자원의 한계에 도달한 것이 한 가지 이유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전보다 살기 힘들어졌다고 흔히 말하지만, 거의 모든 시대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은 살기 힘든 시대에 산다고 여겼을 것이다. 산다는 것 자체가 인간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힘든 삶을 꿋꿋이 견뎌내고 그 속에서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은 힘들어하는 자신을 도울 수 있는 내적 자원이 있을 때 가능하다.

이러한 내적 자원은 가족이 될 수도 있고, 연인이 될 수도 있고, 열정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자신만의 내적 자원을 통해 지친 삶 속에서 ‘힐링’할 수 있다면 힘든 삶도 살아볼 만한 것이 될 수 있다.

병적인 정도는 아니지만 <킬미 힐미>의 차도현이나 <하이드 지킬, 나>의 구서진처럼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마음속에는 한두 개의 또 다른 내가 있다. 그리고 차도현이나 구서진처럼 또 다른 나로 사는 것이 힘들게 느껴질 때도 있다. 이런 자신에게 차도현의 오리진(황정음)이나 구서진의 장하나(한지민)처럼 힘든 나를 도와줄 내적 자원이 간절히 필요하기도 하다. 이런 측면에서 정신질환을 주요 소재로 삼은 드라마의 등장과 인기는 정신적 피폐함 속에서 힐링을 소망하는 현대인의 또 하나의 초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박소진 심리학자는 덕성여자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임상심리학 전공 석사, 발달장애 및 발달심리 전공 박사 수료를 하였다. 현재 한국인지행동심리학회 협동조합 대표이며, 저서로는 <비극은 그의 혀끝에서 시작됐다> <영화 속 심리학> <영화 속 심리학2>가 있다.

이기옥  kunkang198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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