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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희망가] 위암이 복막에서 난소까지 전이~ 다시 건강 찾은 김후남 씨 생생 암 투병기2017년 08월 건강다이제스트 숲향기호 123p

【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이제 덤으로 사는 삶, 나누며 살고 싶어요!”

멀건 귀리죽 세 숟가락이 하루 식사의 전부였다. 옆에 사람이 있어도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도 여러 번이었다.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김후남 씨의 암 투병생활의 시작은 암담했다. 그랬던 김후남 씨의 지금은 기적이라는 말이 걸맞다. 암의 그림자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다. 건강을 되찾은 것은 물론 힘들어하는 암환우를 위로할 만큼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도대체 김후남 씨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그녀의 암 투병 스토리를 들어봤다.

교통사고, 그리고 뜻밖의 암 선고

그해 봄은 김후남 씨에게 너무 가혹했다. 지극히 평범한 직장인으로, 엄마로 살아온 김후남 씨는 2011년 봄, 업무 때문에 고속버스를 타고 지방에 다녀오다가 교통사고가 났다.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좀 다쳐 치료를 받으려고 정형외과에 입원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병원에서 소화가 안 되어 아픈배를 만져보는데 이상한 멍울이 잡혔다.

“병원에서 CT를 찍고 검사를 해보니 난소에 혹이 있대요. 아무래도 수술을 해야 할 것 같아서 큰 병원으로 가서 다시 검사를 받으니 그게 혹일 확률이 50%, 암일 확률이 50%라고 했어요. 설마 암일까 담담하게 수술실로 들어가 수술을 받았어요.”

1년 전에 건강검진도 했고, 평소에 건강했던 터라 큰 걱정은 안 됐다. 그런데 수술은 예상보다 길어졌고, 최악의 시나리오가 기다리고 있었다. 암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위에서부터 시작된 암이 복막과 난소에 전이됐다고 했다. 위를 2/3 절제하고, 난소를 절제하고, 복막에 뿌려진 암은 손을 못 댔다고 했다. 이런 엄청난 사실 앞에서도 김후남 씨는 여전히 담담히 잘 버텨주었다. 그러나 그때 의사의 말 한마디는 김후남 씨를 절망의 나락으로 떠밀었다.

울면서 찾은 춘천 암요양병원, 희망이 되다!

지금도 그 말을 잊을 수가 없다. 수술을 받고 회복하던 중 항암치료 때문에 남편과 종양내과를 찾았을 때였다.

“의사가 항암치료를 할 건지 말 건지 물었어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항암을 하면 생명만 연장할 뿐이지 큰 의미가 없습니다.’라고 했어요. 너무 충격이었어요. 전 제 몸이 그 정도일지는 몰랐거든요.”

결국 항암치료를 시작했고 그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밥을 먹기는커녕 멀겋게 끓인 귀리죽도 한 끼에 한 숟가락 밖에 못 떴다.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도 여러 번, 체중은 16kg이나 빠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암 요양병원을 알아보던 중 암스트롱요양병원을 알게 됐다. 다른 것도 좋았지만 예배가 있는 곳이라는 말에 입원하기로 했다.

“하루 이틀 지나다 보니 잘 왔다 싶었어요.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위로도 하고 떠들고 웃다 보면 기분이 좋아져요. 병원에서 주는 암환자식을 골고루 먹고, 내 몸 상태에 따라 원하는 운동도 하고, 좋은 공기도 듬뿍 마셨어요. 그리고 병원에서 제공하는 침·뜸·고압산소요법· 풍욕· 고주파 치료 등을 열심히 해서 암을 극복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병세가 워낙 위중한 터라 몸은 금방 회복되지 않았지만 암요양병원에서의 생활이 거듭될수록 몸이 좋아지는 것이 느껴졌고, 실제로도 그랬다. 수술 받고 항암치료한 지 2년이 지나자 병원에서는 손도 못 댔던 복막의 암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그로부터 1년 후 마침내 그렇게 기다리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암이 거의 없어졌다고 했던 것이다.

얼마나 암이 사라지기를 기다리고 기다렸던가. 암이 없어졌다는 말에 김후남 씨는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저는 하나님 말씀, 중보기도, 예배 그리고 요양병원 생활 덕분에 건강을 되찾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렇게 회복한 몸을 계속 유지하려면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어요. 3년 동안 입원해 있으면서 몸이 좋아져서 퇴원했지만 너무 무리해서 다시 요양병원을 찾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그러면서 깨달은 것이 다 나았다고 해도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는 거예요.”

고주파 온열치료 효과도 톡톡히

그래서 김후남 씨는 특별한 행보를 결정했다. 암이 거의 안 보인다는 말에 2014년 9월에 퇴원했지만 그 이후로도 일 년에는 3~4달씩 춘천 암요양병원에 입원하여 암환우 항암 맞춤케어를 받아 회복기의 여유를 가진다.

특히 올해부터는 최신 고주파 온열치료를 받았다. 미국 FDA 승인을 받은 후 2014년 국내 KFDA 인가를 받은 4채널 고주파 온열암치료기 BSD-2000 이 그것이다. BSD-2000 고주파 온열암치료기는 실시간으로 종양 세포 치료 부위의 온도를 확인해 환자 개개인의 상태에 맞는 치료 계획을 세우고 표적 열 치료가 가능하다.

BSD-2000 고주파 온열암치료기는 정상세포를 제외한 저산소증과 낮은 PH상태의 종양세포를 선별해 손상시키기 때문에 정상세포에는 최소한의 영향을 미치면서 암세포를 제거할 수 있다. 또한 암스트롱요양병원에서는 BSD-2000 고주파 온열 암 치료 후 고압산소치료를 병행하여 고온의 열이 몸속에 더 효과적으로 돌고 환우의 자가 면역 기능 향상을 도와준다. BSD-2000 고주파 온열 암치료를 받은 김후남 씨도 예전의 온열치료기와 달리 열이 피부 깊숙이 도달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덤으로 얻은 삶의 나머지는 나눔으로~

김후남 씨는 완치 암환우들과 결성한 ‘암스회’ 모임 활동에도 열정적이다. 암스회는 원래 암스트롱요양병원에서 만난 인연을 이어가고 싶어서 만든 친목 모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거기서 나아가 의미 있는 일을 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9명의 암스회 회원들은 현재 힘든 투병 시간을 보내는 암환우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조언과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덤으로 사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저를 살리신 주님의 뜻과 목적에 합당한 삶을 살기로 결심했어요.”

김후남 씨는 암 덕분에 몸이 ‘쉼’을 얻었다고 말한다. 집안일을 하다가도 운동을 하다가도 몸이 조금이라도 힘들어하는 것 같으면 주저하지 않고 쉰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덧붙이는 말도 “암이 나았다고 무리하지 말라.”는 것이다. 암 투병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건강한 생활을 꾸준히 이어나가야 암의 흔적을 깨끗이 지울 수 있다.

정유경 기자  kunkang198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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