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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희망가] 급성백혈병에서 기사회생한 장은주 씨 인생찬가2017년 06월 건강다이제스트 푸름호

【건강다이제스트 | 허미숙 기자】

봉사하는 삶이 좋았다. 목사인 남편과 함께 하는 것도 좋았다. 청소년 사역은 주어진 소명이라 여겼다. 가출 청소년을 돌보고 소년원 퇴원 청소년들을 돌봤다. 그러던 어느 날 느닷없이 닥친 시련! 결코 예견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건강했던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 다시금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는 장은주 씨(40세). 신앙 안에서 새 생명을 얻었다고 말하는 그녀의 지난 이야기를 들어봤다. 

운명처럼 만난 사람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기독청소년 캠프에서 처음 만났던 남편 이병선 목사는 지금도 장은주 씨에게 운명 같은 사람이다. 14살이라는 나이 차이 때문만은 아니다. 일찍부터 청소년 사역에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던 남편이었다. 가출 청소년의 든든한 대부였고, 소년원 퇴원 청소년들에게도 비빌 언덕이 되어주던 목사님이었다.

그것은 신학대학을 졸업한 장은주 씨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결혼을 했고, 함께 그 일을 하기 시작했다. 남편과 힘 모아 갈 곳 없는 10대 청소년들을 돌보는 사역에 두 팔 걷어 부치고 매달렸다. 마음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고, 시간을 나누며 청소년들이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도왔다.

장은주 씨는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고, 그 일을 남편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또한 운명이었을까? 장은주 씨의 삶은 하루아침에 벼랑으로 내몰렸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건강이 발목을 잡았다.

2014년 12월에…

남편과 함께 개척교회도 세우고 청소년 사역도 열심히 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2014년 가을 어느 날!

교회 모임에 참석했던 장은주 씨는 날 생선을 먹고 혼쭐이 났다. 토하고 설사하고…난리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배탈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두 달이나 계속됐다.

그러더니 감기도 시작됐다. 그런데 예전 감기와 많이 달랐다.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낫지를 않았다. 밤만 되면 고열에 시달렸고, 입안이 헐어 밥조차 먹을 수 없었다.

결국 동네 내과를 찾았던 장은주 씨는 곧바로 2차병원으로 향했다. 단순한 감기가 아니라고 했다. 감기라면 이렇게 안 나을 리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배를 눌렀는데 너무 아팠다. 그러자 담당의사는 곧바로 2차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위험하다는 말과 함께였다.

그렇게 가게 된 2차병원에서 혈액검사도 했고, CT촬영도 했다. 그러더니 담당의사는 “백혈구 수치가 너무 높다.”며 “대학병원으로 가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 후의 일은 지금도 아련한 꿈속 같다.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병원 응급실로 가서 셀 수 없이 많은 검사를 했었고, 검사결과를 손에 든 담당의사는 병명도 말하지 않은 채 “치료를 좀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남편이 이상했다. 병실을 옮기면서 자꾸만 눈물을 훔쳤다. 그 이유는 입원한 지 사흘 만에 알았다.

“사흘 만에 비로소 제 병명을 알게 됐어요. 급성백혈병이라고 하더군요.”

믿어지지 않았다. “왜, 내가?” 반문할 정도였다. 크게 한 번 앓아본 적도 없었던 그녀였다. 두 달 동안 앓았던 감기를 빼면 누구보다 건강했던 그녀였다. 나이도 한창 때였다. 서른일곱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백혈병? 참으로 믿기지 않는 일이었지만 병원측의 움직임은 긴박하게 돌아갔다. 백혈구 수치가 너무 높아서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마치 남의 일처럼 생각되었다는 장은주 씨! 그저 멍했다. 슬픔도 느껴지지 않았다고 한다. 2014년 12월, 장은주 씨는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고 생사의 기로에 선 주인공이 됐다.

신앙의 힘으로 5차 항암을 하고…

치솟은 백혈구 수치는 떨어질 줄 모르고 구내염 때문에 목안까지 헐어서 물조차 삼킬 수 없는 상황! 영양제를 맞으면서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다. 그런 와중에 시작된 항암치료는 고통스러웠다. 세상에 태어나서 그런 고통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장장 8개월 간 5차례의 항암치료를 하면서 산고의 진통보다 고통스런 골수검사를 수시로 해야 했고, 폐렴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간 적도 있었다. 독한 항암치료로 손밥톱도 다 빠졌고, 머리카락도 두 번이나 났다 빠졌다를 반복했다. 기력이 없을 때는 화장실 가는 것조차 숨이 차 침대에서 처리하기도 했다.

그런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도 장은주 씨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 되뇌었다고 한다. 하나님의 뜻이라 여겼다고 한다.

▲ 장은주 씨는 힘든 투병 과정에서 가족은 큰 힘이 되어주었다고 말한다.

“이 또한 하나님께서 뜻이 있어서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죽는 것도 사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날마다 일어나자마자 피를 뽑고 그날의 적혈구 수치, 백혈구 수치, 호중구 수치를 파악하는 일도 불평하지 않았다. 멸균음식만 먹어야 하고, 마음대로 외출조차 못하는 처지도 비관하지 않았다. 죽고 사는 문제도 신앙 안에서는 얼마든지 극복될 수 있는 거였다. 장은주 씨는 “신앙 안에서 몸과 마음을 추스르면서 평온함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런 덕분이었을까? 2015년 8월, 5차 항암치료를 마친 장은주 씨는 “앞으로는 추적 관리를 해보자.”는 담당의사의 말을 듣고 퇴원할 수 있었다. 이식이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17년 4월 현재, 장은주 씨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감사하고 사랑하고 나누는 삶 실천

5차 항암 후 2년이 지난 지금 장은주 씨는 3달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체크만 한다고 한다. 지난 2월 체크에서 담당의사는 “다 좋다.”고 말했다. 백혈구 수치도 좋고, 유전자검사도 이상 없다고 했다.

장은주 씨는 “이 모든 것이 신의 은혜”라고 말한다. 특별한 비법을 실천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1. 먹는 것도 그렇다. 특별히 챙겨 먹는 건 없다. 제철 음식을 기분 좋게 먹으려고 노력한다. 다만 날 음식은 안 먹고, 되도록 팔팔 끓여서 먹는 정도다.

2. 틈틈이 운동은 하지만 그 또한 특별하지는 않다.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는 정도다.

3. 매사 감사한 마음으로 사는 것은 예전과 많이 달라진 점이다. 평범한 일상에서 새록새록 감사함을 느끼며 산다. 계절이 바뀌는 것도 감사하게 느껴지고, 밥하는 것도 감사하게 느껴지고, 딸아이의 머리를 묶어주는 것도 즐겁고 행복하다. 아팠던 시간이 그녀에게 준 교훈처럼 느껴진다. 매사 감사함을 배우게 되었다는 것….

▲ 장은주 씨는 신앙 안에서 받은 은혜를 더 큰 사랑으로 베풀고 싶어 한다.

그래서 지금 장은주 씨는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사함을 세상에 되돌려 주기 위해 열심이다. 청소년 사역에 사력을 다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 합정동에 가정집을 마련하고, 집 같은 분위기에서 가출 청소년, 소년원 퇴원 청소년들을 지도하고 교육하고 있다. 2년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그들의 자립을 응원하고 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남편과 함께 즐겁게 그 일을 하고 있다.

오늘도 신앙 안에서 받은 은혜를 더 큰 사랑으로 베풀고 있는 장은주 씨! 힘든 투병을 이겨내고 다시금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 그녀가 당부하는 말은 짧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절망의 끝이 보이지 않을 때 이 말을 주문처럼 외우면 암도 그리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고 말한다.

허미숙 기자  kunkang198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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