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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희망가] 대장암 이겨내고 인생 2막 연 유동수 씨 암 치유기2017년 03월 건강다이제스트 생동호

【건강다이제스트 | 건강칼럼니스트 문종환】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차가운 바람이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다. 유동수 씨(63)를 처음 만난 것은 경북 영양으로 귀농한 어느 농가에서였다. 초췌한 얼굴이 영락없이 환자처럼 보였다. 얘기를 해보니 얼마 전에 암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 다시금 그를 찾았다. 궁금했다. ‘암은 어떻게 됐을까?’ 해가 산 능선에 걸려 있을 즈음 그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햇살이 이중 창문을 뚫고 들어와 있었다. 4년 전 초췌했던 그의 모습은 거기 없었다.

십중팔구 암?

유동수 씨는 초고층 건축 시공 품질관리 전문가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국내에는 보기 드문 직업이었지만 초고층 건물을 지을 경우 그와 같은 전문가가 없으면 시공 자체를 못 한다. 안전이 생명인 초고층 건축 분야에서 그는 늘 긴장하면서 살아왔다. 지나치게 긴장하면서 살다 보니 고기와 술은 빼놓을 수 없는 그의 일과가 되었다.

그런 탓이었을까? 가끔 혈변을 보는 일이 발생했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다가 아라비아반도 아부다비 현장에서 일하다가 또 혈변을 보게 되었다. 그때는 뭔가 께름칙한 생각이 들어 검사를 받게 되었다. 현장에서 가까운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고, 그 결과는 그냥 넘길 수 없었다.

검사를 담당했던 의사는 말했다. “정확한 것은 조직검사 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십중팔구 암일 확률이 높다.”는 의견을 내놓았던 것이다. 유동수 씨는 ‘비로소 올 것이 왔구나.’ 했다.

직장암 3기에 대장암 전이…

먼 이국땅에서 십중팔구 암일 확률이 높다는 진단을 받자마자 유동수 씨는 급히 귀국해 정밀검사를 받았다. 그 결과 나온 최종 진단명은 ‘직장암 3기, 대장 전이’였다. 그 당시의 상황을 그는 이렇게 회고한다.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별 생각 없었어요. 어떤 암 환자는 암 확진 시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감을, 그리고 공포와 두려움, 분노가 함께 섞여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있었다고도 하는데 저는 그런 감정적 변화가 별로 없었어요.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암) 정도의 병이 발생할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어서였을 거예요. 고기와 술로 보내는 날들이 다반사였고 늘 긴장하면서 살아야 했으니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던 거죠. 만성피로는 생활이었으니까요.”

곧이어 병원치료가 시작되었다. 암의 크기가 커서 바로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태여서 의료진은 먼저 방사선치료와 항암화학요법으로 크기를 줄인 후 수술할 것을 권유하였고, 그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방사선치료 30회를 마친 후 항암화학요법이 시작되었고, 총 12차가 예정되어 있었다. 항암화학요법 12차회 중 중간 정도에 이르러 검사결과 수술을 해도 되겠다는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수술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치료과정은 항문을 살려 평생 장루를 달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을 줄이기 위함이기도 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됐다고 했다. 하지만 한 달 동안은 인공장루를 달고 생활해야 했다. 그리고 이미 계획되어 있던 항암화학요법은 경구용과 주사용 항암제를 겸용하면서 무사히 잘 마쳤다.

물론 몇 가지 부작용은 있었다. 다른 암 환자도 흔히 겪는 부작용들이었다. 대표적인 증상인 탈모는 없었으나 음식 냄새에 민감해져 음식 냄새를 맡지 못했다. 당연히 밥을 먹기 어려웠다. 코를 막고 밥을 먹어야 했다. 그것도 쉽지 않았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어지럼증이 심하게 나타났다. 빈혈 증상의 일종이었다. 이 때문에 두 번이나 쓰러졌다. 한 번은 화장실에 가다가 쓰러졌고 또 한 번은 식당으로 가다가 쓰러져 머리가 벽에 부딪혀 상처가 나 꿰매기도 했다.

이러한 증상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차츰차츰 옅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병원치료를 받으면서도 무리하게 일은 계속해야 했다. 경제적인 부분도 문제였거니와 그가 없으면 공사현장에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귀농을 결심하다!

계획된 병원치료를 모두 마쳤을 때 유동수 씨는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된다. 정년퇴직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던 시점이라 그런 결정도 가능했을 것이다. 귀농이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여러 곳을 알아보았고 결국 경북 영양이라는 곳으로 귀농을 했다. 아내와 아이를 서울에 둔 채 낯선 곳으로 간다는 게 쉽지는 않은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방이라도 질식해버릴 것 같은 서울을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경북 영양에서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다.

낯선 땅 영양에서 제2의 인생 시작!

많은 것이 달라졌다. 하는 일도 달라졌고 만나는 사람들도 달라졌다. 회색도시 대신 계절마다 바뀌는 자연풍광은 눈부시게 아름다워 이성을 잃을 정도였다.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던 탓일까? 특히 밤하늘 별빛은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반딧불은 그 틈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유동수 씨는 제법 쓸 만한 카메라도 구입했다. 영양의 자연을 담고 싶어서였다. 영양의 별과 달도 카메라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면서 그는 서툰 농부공부도 시작했다. 최소한 자급자족은 해야겠다는 생각에 농사 언저리에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그가 짓는 농사는 치유밥상을 차리기 위한 유기농법이었다. 난생 처음 접해보는 농사, 결코 만만치 않았다. 트랙터 교육도 받고 농업기술교육도 받았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그는 농부가 되어갔다.

바뀐 밥상, 그것은 혁명이었다!

초짜 농부가 되면서 유동수 씨의 생활도 많이 달라졌다. 그때까지 먹어 온 것은 모두 잊기로 했다. 좋아한 음식도 모두 처음으로 돌리기로 했다. 일만 마치면 습관적으로 찾던 술과 고기는 추억 속에 잠가 놓기로 했다.

직장암과 대장암 환자는 ‘술과 고기’의 세트메뉴를 좋아하는 비율이 아주 높다. 이는 술과 고기 세트메뉴가 직장암이나 대장암 발생에 어느 정도 기여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고기와 술을 즐기던 생활습관은 버려야 함을 그는 알고 있었다.

암 진단 후 그가 크게 깨달은 것이 있다면 건강한 삶은 좋은 밥상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였다. 밥상부터 바꾸었다. 이러한 밥상은 보기와 다르게 섬세한 그의 성격과 맞물리면서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모든 것은 직접 만들어 먹는 것을 기본으로 했다. 현미를 직접 발아시킨 발아현미에 다양한 콩, 아마란스와 울금가루를 더하여 밥을 하고 김치와 된장·청국장을 기본 반찬으로 하고 여기에 계절채소를 더했다.

특이한 것은 양파를 말려서 볶은 후 가루를 내서 설탕 대신 사용한다는 점이다. 조리수도 직접 만드는 데 멸치·다시마·무·파·양파·표고버섯·대구머리 말린 것을 섞어 끓인 후 얼려서 조금씩 꺼내 음식 만들 때 사용했다.

그리고 물을 대신해서 여러 가지 차를 수시로 마셨다. 종류로는 뽕잎, 비트, 발아현미 볶은 것, 돼지감자, 양파껍질 벗긴 것 등이 그것이다. 양파껍질 벗긴 것을 끓이면 색상도 예쁘고 마시기도 괜찮아 즐겨 마시는 편이라고 한다.

밥상을 차릴 때는 몇 가지 원칙을 반드시 지켰다. 핵심적인 것은 ▶MSG를 포함하여 일체의 식품첨가물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 ▶가공식품은 최대한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 ▶육류를 밥상에서 보지 않는다는 것 등이 그것이었다.

간식으로는 마늘을 구입하여 흑마늘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건강식품 등은 먹지 않았다. 즐겨 마시던 술은 최대한 자제했다. 생막걸리는 어쩔 수 없이 마셨다. 직장을 절제한 탓에 변의를 오래 참지 못했다. 수술 후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약간씩 나아지고 있긴 하지만 궁극적으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불편하지만 화장실에 자주 가는 수밖에 없었다. 낮에는 그나마 약간의 조절이 가능하지만 밤에는 그것마저도 조절이 잘 안 됐다. 그래서 밤에 화장실 가는 빈도를 최대한 줄일 필요가 있었다. 영양의 생막걸리가 그 역할을 했다. 생막걸리는 장에 유익한 물질이므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인생아 천천히 가자

참 바삐 살아온 지난 세월이었다. 초긴장 상태로 살다가 그것을 벗어던지니 그 세상이 바로 유토피아였다. 귀농을 하고 초보 농부로 산 지 어언 4년. 스트레스 받을 일도 거의 없다. 앞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칠지 모르지만 걱정하지는 않는다. 그건 그때 가서 해결하면 될 테니까. 한때는 폐에 물혹이 생겨 다시 한 번 긴장하긴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없어졌다.

지금은 6개월 간격으로 검사(CT, MRI, PET, 초음파, X-ray, 혈액검사 등을 돌아가며 검사함)를 받고 있다. 검사결과는 “이상 없음”이다. 언제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는 알 수 없으나 설령 최악의 상황이 온다 해도 최초 암 진단 때처럼 극단적인 감정의 변화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의 삶이 척박해 암이 발생한 만큼 즐거움과 행복으로 채워가는 데만 집중할 생각이다.

그래서 그동안 소홀히 했던 그의 몸과 마음에 봉사하는 생각과 행동을 해 나갈 것이다. 그것뿐이다. 바쁘게 살아오면서 보고 느끼고 즐기지 못했던 것들, 이제 천천히 가면서 음미하면서 느끼고 즐길 것이다. 또한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땐 망설이지 않고 떠날 것이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그의 삶에 대한 작은 보답임을 이제야 알게 됐기 때문이다.

문종환 칼럼니스트  diegest@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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