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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희망가] 유방암에서 폐암까지 거뜬히 이겨낸 백설희 씨 체험담2017년 02월 건강다이제스트 감사호

【건강다이제스트 | 허미숙 기자】

“좋은 생각을 하면 암세포도 맥을 못 춘다고 믿습니다”

남부러울 것 없었다. 꿈꾸던 전원생활에 화목한 가족까지…. 강원도 춘천에서 통나무집을 짓고 살던 백설희 씨(50세)는 그래서 행복했다.

그런데 누가 시샘이라도 했던 걸까? 2010년 8월 말 무덥던 어느 날, 샤워를 하던 그녀는 멈칫했다. 왼쪽 가슴에서 딱딱한 게 만져졌다. 이 일은 백설희 씨의 인생 지침을 돌려놓았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암과의 끈질긴 사투! 유방암에서 폐암까지 생사의 기로에서 감당해야 할 고통의 무게는 누구도 짐작 못 한다. 그랬던 그녀가 오늘은 웃는다. 도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호사다마였을까?

초등학생 두 아들 때문이었다. 자연 속에서 맘껏 뛰어 놀게 하고 싶어 2000년도부터 강원도 춘천에서 전원생활을 시작했다는 백설희 씨!

집에서 TV를 없애고 그 대신 책을 읽고 가족 간의 대화를 즐기면서 사는 삶이 좋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가족회의도 즐거웠고, 연말이면 가족 10대 뉴스를 선정해 가족 앞에서 발표하는 시간도 더없이 행복했다.

그런데 호사다마였을까? 2010년 8월, 손끝으로 전해지던 왼쪽 가슴의 딱딱한 멍울은 잔잔하던 그녀 삶을 벼랑으로 내몰았다.

처음에는 ‘설마?’ 했다고 한다. “아무런 증상도 없었거든요. 몸무게가 조금 줄었어도 오히려 살이 빠져서 좋아라 했어요.”

하지만 부랴부랴 간 병원에서 초음파를 찍어보더니 조직검사를 하자고 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조직검사 결과를 알려주던 담당의사는 “그냥 혹일 수도 있다.”면서도 토를 달았다. 위치도 그렇고 크기도 그렇고 조금 의심스럽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어차피 혹이어도 제거해야 하니까 수술을 하자.”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수술은 예상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 수술을 끝내고 의사가 알려준 사실은 ▶수술 중 진행한 조직검사 결과 악성종양으로 나왔고 ▶종양 크기는 2.5cm로 2기 초였으며 ▶다행히 임파선 전이는 안 돼 있어 임파선 3개만 잘라내고 부분절제를 했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항암과 방사선은 해야 한다고.

누가 봐도 충격적인 말이었지만 백설희 씨는 담담했던 걸로 기억한다. “이왕 벌어진 일, 그냥 즐겨보자 했어요.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일이라 여겼고, 또 유방암은 치료율도 높다고 했으니까요.”

그래서였을까? 항암 6번, 방사선 32회도 씩씩하게 잘 받았다고 한다. 머리카락은 빠졌지만 구역감은 전혀 없었다. 식욕도 좋았다. 무조건 잘 먹으라고 해서 무조건 잘 먹었다. 운동도 열심히 했다. 병원에 갈 때는 춘천 시내 구석구석을 훑듯이 걸으며 방사선 치료를 다녔다고 한다.

그렇게 모든 치료가 끝났을 때 이제 암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걸로 생각했다. 마흔넷에 느닷없이 찾아온 불행은 그렇게 마무리되는 줄 알았다. 별로 힘들이지 않고 치료가 끝난 것을 행운으로 여겼고, 다시금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온 사실에 기뻐했다. 그런데 왜였을까? 그로부터 2년 후 백설희 씨는 또 다른 절망과 마주해야 했다.

오른쪽 가슴에 또 다시 암세포

꼭 2년 만이었다. 2012년 10월 어느 날, 정기 체크를 하던 백설희 씨는 담당의사로부터 걱정스러운 말을 들어야 했다. 오른쪽 가슴에 뭐가 보인다는 거였다.

그럴 리 없다며 조직검사를 했던 그녀는 아연실색했다. 왼쪽 가슴과 다른 양상의 악성종양이 보인다고 했다. 크기는 1.3cm 정도 되는 1기초의 유방암이라고 했다.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고, 항암과 방사선도 하자고 했다.

“이럴 수도 있나 싶었어요. 재발을 막기 위해 항암도 했고, 방사선도 했고, 운동도 열심히 했는데 또 다시 암이라니….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좀 더 큰 병원에 가보자며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에 가서 또 다시 검사를 했다.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유방암이 맞다고 했다. 재발은 아니고 새로 생긴 암이라고 했다. 수술을 해야 하고 항암과 방사선 치료도 해야 한다고 했다.

어이가 없었지만 또다시 부분절제 수술을 했다. 그러나 항암과 방사선은 안 하고 싶었다. 처음 암 수술을 받고 이것저것 알게 되면서 항암제에 대한 생각도 많이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어요. 치료 기록이 없으면 진료를 받을 수 없다면서 안 된다고 하더군요.”

어쩔 수 없이 또 다시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첫 번째 항암제 맞던 날 바로 부작용이 나타났다. 구토 증상이 나타났다. 두 아들을 낳으면서도 입덧 한 번 해보지 않았던 그녀였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구역감 앞에서 왈칵 공포심이 몰려왔다.

그때부터였다. 춘천 집에서 서울 병원까지 항암치료를 받으러 가는 날이면 아침부터 속이 울렁거렸다. 병원 복도에서 항암치료를 기다리던 그 시간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지옥 같았다. 6개월 동안 진행된 고통스런 항암치료가 끝났을 때 백설희 씨는 비로소 지옥에서 벗어난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순진한 착각이었다.

폐에 1.7cm 암세포가 보인다?

항암치료 후 찍었던 CT 결과를 보러 한 달 만에 병원을 찾았던 백설희 씨에게 담당의사는 이상한 말을 했다. 심장 바로 밑 폐 깊숙한 곳에 1.7cm 크기의 암세포가 보인다는 거였다. 더군다나 위치적으로 수술도 굉장히 위험해서 스텐트를 삽입해 수술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까지 했다.

기가 막혔다. 6개월 동안 죽을 고생을 하며 항암치료를 했는데 6개월 사이에 또 다시 폐암이라니…. 그 힘든 항암치료를 왜 했는지 묻고 싶었다. 항암치료라는 게 과연 효과가 있기나 한 건지 따지고 싶었다.

억울하기도 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한 번도 아니고 벌써 세 번씩이나…’ 그럴 순 없는 거였다.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였다. 담당의사에게 “더 이상 제 몸에 칼을 대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병원문을 나섰다.

볶은 곡식을 먹고 야외취침을 하고~

한 번 수술로 끝날 줄 알았던 암세포가 자리를 옮겨가며 생기고 또 생기자 백설희 씨는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항암치료를 해도 방사선 치료를 해도 암세포는 결코 없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 끝에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조금 색다른 것이었다. 병원치료에 너무 실망한 탓도 한몫했다. 우연히 알게 된 볶은 곡식 건강법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백설희 씨는 “하루에 두 끼를 볶은 곡식으로 먹고 잠은 야외에서 자는 건강법이었는데 그 원리를 듣게 되면서 한 번 실천해볼 결심을 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렇게 시작된 볶은 곡식 건강법은 지금도 여전히 그녀가 사는 방식이 되고 있다.

1. 하루 두 끼 볶은 곡식을 꼭꼭 씹어서 먹었다. 볶은 곡식은 현미, 찰현미, 찰보리, 흑미, 수수, 콩 등 6가지 곡물을 쪄서 말린 뒤 가마솥에서 알이 톡톡 터질 정도로 볶은 것이었다. 볶은 곡식은 장에서 열을 내기 때문에 체온을 높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 백설희 씨는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며 긍정의 생각은 암세포도 잡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2. 반찬은 주로 묵은 나물을 많이 먹었다. 들깨 가루 넣은 시래기 볶음이나 황태미역국을 즐겨 먹었다. 특히 토마토를 유기농으로 재배해서 만든 토마토 캐닝은 지금도 즐겨 먹고 있는 건강식이다. 백설희 씨는 “토마토 캐닝은 누구나 먹어도 좋은 최고의 건강식”이라고 말한다.

① 빨갛게 숙성시킨 토마토에 십자로 칼집을 내고 뜨거운 물에 데쳐서 껍질을 벗긴다.

② 껍질 벗긴 토마토를 찬물에 담갔다가 건져 8등분한 후 천일염을 조금 넣고 끓인다. 이때 물은 넣지 않는다.

③ 끓인 토마토를 뜨거운 상태에서 열탕 소독한 유리병에 담아 뚜껑을 잠그고 거꾸로 해서 하루 정도 엎어놓는다.

④ 이렇게 만든 것을 서늘한 곳에 보관해 두고 그때그때 따서 먹는다.

3. 잠은 야외취침을 했다. 집 앞에 지어놓은 원두막에서 남편과 함께 야외취침을 했다. 폐세포는 찬 공기와 접촉할수록 팽창되고 부풀어 올라서 산소를 받아들이는 기능이 최고조에 이른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었다. 간혹 집안에서 잘 때는 냉방으로 한 뒤 모든 창문을 열어놓고 자는 방법을 택했다.

4.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냉수욕을 했고, 시간 날 때마다 맨발로 산행을 했다. 냉수욕으로 날마다 상쾌한 하루의 문을 열었고, 강촌이나 춘천에 있는 야트막한 산을 맨발로 걷고 또 걸었다.

그런 생활을 한 지 2년이 지났을 때 백설희 씨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병원을 찾았다. 암 진단을 받은 지 꼭 5년 만이었다. 혜택이 있을 때 검사를 받아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해서 병원을 찾았던 백설희 씨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동안 뭘하셨어요?”

초음파와 CT 사진을 보며 담당의사가 물어본 말이었다.

“2년 만에 왔는데 그동안 뭘 했냐고 묻더군요.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면서요. 암세포라면 줄어들 리가 없는데 폐에 있던 1.7cm 크기가 줄어들었다고 했어요. 또 점처럼 자잘하게 퍼져 있던 것도 대체로 다 줄어들었다면서 암이 아니었던 것 같다는 거예요. 암이라면 줄어들 리가 없다면서요.”

이 말을 듣고 백설희 씨는 환하게 웃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1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 오라는 말만 듣고 병원문을 나왔다고 말한다. 그것이 2015년 9월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1년이 훌쩍 지난 2016년 12월 현재 백설희 씨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지난 9월이 병원에서 오라는 정기 검진일이었는데 가지 않았어요. 지난 4월, 국가에서 실시하는 건강검진 결과 아무 이상이 없기도 했고요. 설사 또 다시 암이 발견된다 해도 항암치료를 하고 방사선 치료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저 오늘 주어진 하루에 충실하게 살고 싶은 것이 백설희 씨의 심경이다. 그래서 새로운 일도 시작했다. 2016년 11월부터 가평에 있는 하나재가노인복지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 중이다. 백설희 씨는 “비로소 천직을 찾은 느낌”이라며 “늦게나마 봉사하는 삶을 살게 된 건 다시없는 축복처럼 여겨진다.”고 말한다.

오늘도 자신을 위해 살기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백설희 씨!

그런 그녀가 지금 이 시간에도 암이라는 적수를 만나 힘들어하는 환우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이다. 긍정의 생각은 암세포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좋고 행복한 생각을 하면 암세포도 맥을 못 춘다고 믿고 있는 그녀는 그래서 오늘도 봉사의 즐거움에 푹 빠져 산다.

허미숙 기자  kunkang198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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