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정의 행복테라피] 착한 여자의 딜레마

【건강다이제스트 | 유은정 원장 (유은정의 좋은의원)】

착한 여자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나볼 수 있다. 나 역시 스스로 내가 착한 여자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착한 여자 테스트’를 해보면서 높은 점수에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정신과 상담실에서도 착한 여자는 자주 만나볼 수 있다. 가뜩이나 상처투성이인 착한 여자들을 절대로 혼내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이런 이야기를 해주곤 한다.

그녀들은 지금껏 ‘너는 착한 여자이고, 정말 바보같이 살고 있다.’는 메시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나 역시 세상과 같은 메시지를 주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대신, 같은 편이 되어서 상대방을 함께 욕해주곤 한다.

하지만 함께 욕하다 보면 치료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같이 헤맬 때도 있다. 이때 필요한 작업은 ‘착한 게 지나칠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M의 비만

M은 우울증 치료로 나에게 왔던 20대 후반의 ‘착한’ 여자였다. 우울증이 회복되면서 알게 모르게 찐 살을 빼고 싶다는 말에 함께 비만치료를 시작했었고, 10kg 가까이 빠진 모습에 환자 스스로도, 의사인 나도 아주 흡족했던 기억이 난다.

석 달이 흘렀을까? 모습을 보이지 않던 M이 조금은 살이 찐 모습으로 등장했다. 그 이후로는 좀체 살이 빠지지 않았다. 이유가 있었다. ‘아르바이트 시작’이라는 생활의 변화가 그 중심에 있었다.

그녀가 새로 사귄 남자친구는 야간 타임 매장 알바를 구하지 못해 그녀에게 도와달라고 했고,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어떡해.’라는 생각으로 퇴근 후 힘든 몸을 이끌고 야간 알바를 시작한 그녀였다. 든든히 먹어야 일을 열심히 도와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퇴근 후 ‘라면과 김밥’을 먹었고, 하루 종일 지친 몸은 새벽녘에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이때 나의 처방은 “남자친구의 알바를 당장 그만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록 그만두지 못했다. 알바생 구하기가 어려워서였다.

그런 그녀에게 돌아오는 보상은 무엇일까?

“남자친구를 좋아하니까 그 사람을 위해 필요한 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 그만둔다고 하면 힘들어 할 것이고, 아직은 내가 할 수 있으니까 더 해도 돼요. 아직은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요.”

그녀에게 돌아오는 가장 큰 보상은 ‘내가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결국 자신에게 현실적으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깨달아야 한다.

착한 여자의 조건

한국인들에게 너무나 친숙한 도덕적 가치,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격언이 있다.

그렇지만 “남에게 대접받지 못하더라도 계속 남을 대접하라.”는 것을 옳다고 해야 할까? 남에게 어디까지 대접해야 하는 걸까? 무조건적인 사랑과 희생이 정말 가능한 걸까?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대접하는 것은 아주 좋은 덕목이다. 하지만 기억할 것은 우리의 그런 행동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는 이야기이다. 정말 상대방을 위한 마음인가? 아니면 거절하지 못하고 남의 눈치를 보고 있는 내 자신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채우기 위한 나의 완벽주의 때문인가?

결론적으로 말해 착한 여자보다 사실 ‘더 착한’ 여자는 자신의 삶의 균형을 찾는 여자다.

● 거절할 때와 승낙할 때를 아는 것이고,
● 당신이 남을 도와주듯이 쉽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다는 것이고,
●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살도록 내버려두는 것이고,
● 항상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남들과 솔직하고 꾸밈없는 대화를 나누는 것이고,
● 완벽주의를 청산하고 불완전한 자기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착한 여자 신드롬에 숨어있는 함정

‘착한 여자에 대한 정의’는 결국, 남들의 칭찬을 받으려고 애쓰고 자기 모습이 없어지는 것도 감수하는 여자였던 것이다. 다른 사람과 나의 경계선을 지키지 않고는 ‘착함’이 착함으로 끝나지 않는다.

따라서 나를 살찌게 만드는 것들과는 멀리 할 수 있는 “NO!”라고 말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완벽주의를 버리는 것 또한 놓치면 안 되는 포인트! 착한 여자는 착하기만 한 것 같지만, 사실 남을 위해서 착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착해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인정과 사랑을 위해서 완벽해지고 또 완벽해지려고 한다.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결국 ‘내’가 완성된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어찌 보면, 남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라고도 볼 수 있다. 낮은 자존감이 마음속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데, 내 존재 자체만으로는 내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인정에 목말라 있고,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 속에서 늘 열등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물질 만능주의, 성형중독이 ‘눈에 보이는 것’과 ‘자신’을 비교하는 마음을 부추기고 있다. SNS(소셜 네트워크)상에서 남들은 다 행복해 보이고 자신은 아무리 노력해도 좋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흙수저론’에서도 눈에 보이는 잣대로 자신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며 부족한 자기를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저성장 시대에 들어섰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이 눈에 보이는 성공에만 급급했다면,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에 비중을 두며 좀 더 건강하게 내실을 다져야 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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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정 kunkang198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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