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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의 건강비결] 대장암 3기 이겨낸 닥터 연세의대 유계준 명예교수2011년 10월 건강다이제스트 풍성호

【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포기하지 마세요. 고칠 수 있습니다. 희망을 가지세요!”

연세의대 유계준 명예교수가 반평생 넘게 환자에게 했던 말이었다. 가슴 한 켠에 절절한 병을 품고 온 환자 앞에서 유계준 교수는 늘 어둠이 아닌 빛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일흔하고도 두 해를 넘긴 어느 봄날. 이번에는 유계준 교수가 그 세 마디를 스스로 곱씹어야 했다. 어색했다. 그 말을 자신에게 해야 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어색하기만 했던 그 세 마디의 진짜 힘을 실감했다.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가진 그는 대장암 3기를 이겨냈다. 그리고 다시 찾은 진료실에서 그 세 마디를 힘주어 이야기한다. “포기하지 마세요. 고칠 수 있습니다. 희망을 가지세요.”

암, 그것은 예정된 순서였다

유계준 교수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곳은 집이 아닌 그가 현재 일하는 정신과 병원이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는 후배가 운영하는 병원에서 진료를 한다고 했다. 평온한 표정으로 기자를 맞은 그에게선 병마와 싸운 흔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래요. 한 평생 의사로 살아온 제가 누가 봐도 대장암에 걸릴 만한 생활습관으로 살았던 겁니다. 아프고 난 후에 알았어요. 건강에 대한 자만심이 암 덩어리를 키웠다는 것을요.”

세브란스병원에서 정년퇴임 할 때까지 정신과 교수로 살아오면서 그는 의사라는 직업에 충실했다. 의사가 아프면 환자가 더 불편해진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환자 앞에 섰다. 진료 전날에는 술도 자제하고 과로를 하지 않았다. 제자들에게도 의사의 마음이 건전하고 맑아야 치료를 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랬던 그의 생활방식이 조금씩 달라졌던 것은 주임교수가 되면서부터다. 자연히 업무가 많아지고, 신경 쓸 일과 함께 스트레스도 부쩍 늘었다. 그렇게 주임교수로 살던 그에게 또 하나 명예로운 자리가 주어졌다. 세브란스 정신건강병원 초대 병원장에 임명된 것이다.

초대 병원장인 만큼 잘 해보고 싶었다. 시설 정비, 운영 방식은 물론 직원들의 사기 진작에도 직접 나섰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회식을 하는 날이 많아졌다.

고기 회식 뒤에 숨은 대장암의 그림자

대한민국 회식 자리에 고기와 술이 빠지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병원 직원들과의 회식자리도 늘 그랬다. ‘잘 해보겠다.’고 말하며 술을 권하는 직원들의 술잔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원장님을 생각해서 맛있게 구운 고기’도 기쁘게 집어 먹었다.

“고기와 술이 늘 상에 올라왔어요. 그러면서 직원들을 격려하고, 속에 담아둔 이야기도 나누면 병원 분위기도 좋았고요.” 이렇게 똘똘 뭉치다 보니 병원도 점점 자리를 잡았다.

더불어 학생들이 뽑아주는 ‘올해의 교수상’까지 탈 수 있었다. 8년간의 병원장 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임할 때는 잊지 못할 선물을 받았다. 그동안 가르친 120여 명의 제자들이 돈을 모아 책을 출간해주고, 고급 승용차도 선물해줬다.

퇴임 후에는 후배의 병원에 새로운 둥지를 틀고 월·수·금요일만 병원에서 진료를 봤다. 그러다 보니 예전보다 여가 시간이 많아졌다. 자연스럽게 고등학교 친구들과 만나 놀며 지루한 시간을 달랬다.

“의사끼리 만나면 의학적인 이야기뿐이라 재미가 없죠. 그런데 고등학교 친구들과 만나면 달라요. 이야깃거리도 다양하고 성격도 각양각색이고요.” 병원장 때처럼 자주는 아니었지만 친구들과 만나도 으레 고기와 술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명예로운 은퇴, 마음에 맞는 친구들, 거기에 제 몫을 다하는 든든한 가족까지…. 행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적어도 아들의 권유로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을 때까진 말이다.

“‘앎’이 ‘암’을 이긴다”

대장암 3기. 아들이 힘없이 털어놓은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건강검진을 꼬박꼬박 받았지만 대장내시경은 왠지 불편할 것 같아서 늘 미뤄두곤 했었다. 그런데 2007년, 일흔둘의 나이에 처음 받은 대장내시경 검사 후 그는 대장암 3기 환자가 됐다. 처음에는 얼떨떨하고 실감이 안 났다. ‘그래, 내가 암이라고? 그럼 뭘 해야 하지?’ 그가 뭘 해야 할지는 정해져 있었다. 정밀검사 후 수술, 그리고 항암치료였다.

대장암을 극복한 유계준 교수는 지금도 암에 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고 많이 움직이려고 노력한다.

수술을 하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늘 내려다만 봤던 병실 침대 위에서 아침을 맞았고, 눈을 뜨면 환자복 차림이었다. 그리고 의사로 살았던 자신이 얼마나 암에 대해 무지했는지 알게 됐다. 그제야 책을 사서 암에 대해 공부를 했다.

즐겨 먹었던 맛있는 고기, 치질, 화장실에서 담배 피우며 신문 보기, 자주 느꼈던 잔변감 등 원인과 증상에 대해 알았더라면 일찍부터 대장암을 예상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회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치료에 열중하고 65%의 생존율에 희망을 걸었다.

반드시 나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견딜 만했지만 고비는 곧 찾아왔다. “음식도 못 넘기겠고, 머리는 점점 빠졌죠. 8~9번째쯤 되니까 정말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진짜 죽음은 생각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항암치료를 받을 수 있는 건강한 몸을 만들려고 고민했다.

충분한 단백질 섭취를 위해 다양한 육류 살코기, 생선, 콩 요리 등을 가족, 이웃들과 함께 먹었다. “주위에서 맛있게 잘 먹는 모습을 보면 좀 입맛이 돌았죠. 보통 암환자에게 음식을 갖다 주고 먹나 안 먹나 옆에서 지켜보는데 그러면 진짜 안 넘어가요. 차라리 함께 맛있게 먹어주세요.”

항암치료 후 대상포진 주의보!

힘겨웠지만 항암치료를 무사히 견딘 그는 ‘이제 좀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입맛도 돌아왔다. 다시 예전처럼 건강해진 것 같았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아졌다.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고개를 내민 건강에 대한 자만심, 그게 화근이었다.

항암치료가 끝난 지 4달 여 만에 대만 여행을 갈 기회가 있었다. 여행을 가기 전 입 주변이 간지러웠는데 단순포진인 줄 알고 여행을 떠났다. 대만에 도착하자마자 대상포진이 얼굴 전체로 번졌다. 여행은 여행대로 망치고 다시 환자가 돼서 치료를 받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항암치료 후에 대상포진에 걸리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대상포진은 바이러스가 몸에 잠복하고 있다가 면역력이 약해졌을 때 번지니까 항암치료 후에는 꼭 조심하셔야 합니다.”

대상포진에 걸린 이후에는 건강에 대한 자만심은 깔끔히 사라졌다. 이제는 하루에 한 번 변을 볼만큼 건강해졌지만 육류는 피하고 각종 나물, 채소, 콩 요리 위주로 식사를 유지하고 있다. 채소를 골고루 먹기 위해서 비빔밥을 즐겨 먹는다.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고, 평소에 많이 움직이려고 노력한다. 76세인 지금까지 진료를 하는 것도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고, 일하는 사람만이 느끼는 활력을 얻기 위해서다.

“암을 이겨내려면 기적을 바랄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합니다. 주변의 이야기에 흔들리지 마세요. 암을 이길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암을 이겨낼 몸을 만드는 데 주력하세요.”

TIP. 유계준 교수가 밝히는 암 정복 비결

◎ 소식을 하고 골고루 먹는다. 단, 몸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날 음식은 먹지 않는다.

◎ 아프지 않다고, 건강해졌다고 속단하면 안 된다. 특히 항암치료 후 대상포진을 주의한다.

◎ 굶으면 암을 이길 수 없다. 정 입맛이 없으면 주변 사람들과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한다.

◎ 자신은 암을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다. 절망은 치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적절한 운동을 한다. 가벼운 운동이라도 규칙적으로 한다.

◎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암에 걸리기 전에 했던 취미생활 등을 유지한다.

정유경  kunkang198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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