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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희망가] 엄마는 자궁암 딸은 갑상선암 정복선 씨와 이순자 씨 모녀의 기막힌 사연2013년 10월 건강다이제스트 풍성호

【건강다이제스트 | 전서현 기자】

“암이요? 그거 사람이 충분히 이길 수 있습니다."

가장 가깝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이해를 바라는 것이 모녀지간이다. 반면에 가장 가깝기 때문에 모질게 대할 수 있는 것도 모녀지간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어느 순간 엄마와 딸은 친구가 된다.

그런데 여기 일반적인 친구의 의미를 넘어 인생의 아름다운 동행을 하는 모녀가 있어 화제다. 정복선(56세) 씨와 이순자(36세) 씨를 두고 하는 말이다.

엄마는 자궁암을, 딸은 갑상선암을 극복한 후 현재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는 모녀지간이다. 처음엔 딸이 어머니를 보살피고, 그 다음엔 어머니가 딸의 병간호를 하며 서로를 돌봤던 모녀. 이 모녀의 아름다운 동행에 동참해보자.

느닷없는 하혈을 하면서…

 

정복선 씨가 처음 병원을 찾은 것은 하혈 때문이었다. 봄철 모를 심느라 한창 분주할 때 하혈이 쏟아져 내렸다. “생리가 끝났는데 또 생리를 하나보다 했어요. 그래서 참고 일만 했어요.”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그날도 밭에 나가 고추를 심는데 손에 마비가 왔다.

“그때서야 비로소  병원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지만  설마 암일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정복선 씨가 암 판정을 받기 한 해 전인, 1992년도에 남편이 화장실을 다녀오다 뇌진탕으로 세상을 일찍 떠났다. 남편의 죽음 앞에서도 슬퍼할 겨를이 없었던 그녀였다.

“아이가 셋이에요. 무조건 아이들하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에, 독하게 살았죠.”
그런 정복선 씨가 하혈을 하고 손의 힘이 빠진다고 큰 병일 거라고 생각을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병원 4 군데를 돌며 진단을 받다

하혈이 계속되는 중에도 지척에 있는 시댁의 수발까지 들어야 했던 정복선 씨. 남을 위해선 그렇게 헌신하면서도 자신의 몸은 돌보지 않는 것이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이리라.

“하혈이 계속돼 할 수 없이 종합병원에 가서 응급치료만 받고, 돌아오곤 했죠. 종합병원에선 간단히 냉치료만 해주고 개인병원으로 가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찾아간 개인병원에서 정복선 씨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을 들어야 했다. 네 번째로 찾아간 병원에서였다.

“자궁암 3기라면서 보호자를 데리고 오라는데 눈앞이 캄캄하대요. 당시 큰딸이 겨우 16살이었으니까요.”

그것은 1993년, 정복선 씨 나이 36세 때의 일이다. 암 판정을 받았지만 너무도 막막했던 상황. 데려갈 보호자가 없어 차일피일하는 사이 하루에 패드를 열 개나 써도 모자랄 정도로 하혈이 심해졌다.

“하혈이 너무 심하자 하루는 시동생이 봉고차를 빌려와서 부랴부랴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병원에 갔더니 다음 날 다시 오라는데 기가 막혔어요.”

정복선 씨는 의료진에게 고함을 질렀다고 한다. “나 죽으면 당신들이 우리 아이 셋을 책임질 거예요?”

암 판정을 받고서도 오로지 아이들 생각뿐이었던 정복선 씨. 그녀의 피맺힌 절규에 응급실 의료진은 검사를 시작했고, 그날 바로 입원을 했다.

장례준비 했지만  완치 판정 받은 주인공

대전의 모 병원에서 항암 치료를 받은 시절을 회상하는 정복선 씨. “지금 생각하면 나중에 받은 암 수술보다 항암치료가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머리가 너무 뜨거워서 가발도 쓸 수 없었어요. 하지만 육체는 힘들어도 마음만은 스트레스 없이 즐겁게 가지려고 노력했어요. 제가 암이면 어떻습니까? 이기면 되잖아요.”

이렇게 용감한 정복선 씨도 서울의 대형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으라는 소리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으로 가라는 소리에 다들 제 장례준비를 했었지요. 가망이 없어서 서울로 보내나 보다 했어요.”

그렇게 서울에서 수술을 받은 정복선 씨는 우려와는 달리 빠른 쾌유를 보였다.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당일 스스로 걸어 다니는 최초의 환자가 바로 정복선 씨였다.

그 이후, 암 판정 당시부터 마시던 인삼과 느릅나무 달인 물을 하루에 몇 통씩 마시면서 건강이 점차 호전, 암 완치 판정으로 이어졌다.

딸의 암 진단 소식에 가슴에 피멍이 들고

그토록 용감하게 살아온 정복선 씨이지만 또 한 번 하늘이 무너지는 경험을 해야 했다. 막 결혼을 해서 돌도 안 된 딸을 둔 큰딸 이순자 씨가 갑상선암 판정을 받은 것이다. 자신이 암 판정을 받았을 때보다 더한 절망으로 가슴이 먹먹했다는 정복선 씨. 그런 그녀의 큰딸 이순자 씨 역시 병원 몇 군데를 돌아보고 나서야 정확한 암 판정을 받을 수 있었다.

“초기라 왼쪽은 아무 이상이 없었는지 처음엔 아무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왔어요. 그런데 다시 오라는 소리에 갔더니 암이라는 거예요.”

그 당시 이순자 씨의 나이는 갓 23살이었다. 이후 찾아간 암 전문병원에선 다시 암이 아니라는 오진이 나왔다. 그저 오진이겠거니 싶어 안심을 한 이순자 씨를 끝까지 설득한 건 남편이었다. 검사 자체가 고통스러웠던 이순자 씨는 병원을 가지 않겠다고 떼를 썼고 그런 이순자 씨를 달래고 얼래서 남편은 기어이 다시 정밀검사를 받게 했다.

“서울대 암 전문의 선생님께 수술 예약을 하고 6개월 후 수술을 받았는데 그땐 이미 오른쪽까지 전이가 돼 심각한 상황이었어요. 만약 남편이 서둘러 정밀검진을 다시 받자고 재촉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말을 잇지 못하는 이순자 씨. “엄마는 수술 후 바로 건강한 생활을 했는데 전 그렇지 못했어요. 저 때문에 우리 아들은 행복한 유년기가 없어요.”

20대 초반 결혼을 일찍 해 아줌마 소리는 듣긴 했지만 여자로선 한창 아름다울 나이에 감행한 갑상선 수술은 이순자 씨에게 우울증으로 왔다.

“수술을 마치고 방사선 동위원소 치료를 받았습니다. 제 몸에 있는 물질이 타인에게 옮으면 안 되기 때문에 2주 동안은 가족과 떨어져 혼자 있어야 했습니다. 호텔에 혼자 머물면서 남편이 아침, 저녁으로 얼굴만 보러 왔었죠. 제일 괴로웠던 것이 돌 지난 우리 아들 얼굴조차 못 보는 거였어요.”

인삼, 느릅나무 달인 물 딸에게도 효과

우울증을 앓는 딸을 지켜봐야 하는 정복선 씨의 가슴도 타들어갔다. 그런 그녀가 딸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마셨던 인삼과 느릅나무 달인 물을 마시게 하는 것뿐이었다.

“엄마가 암 투병을 하던 당시 전 어린 동생들에게 ‘우리가 잘해야 엄마가 죽지 않는다고, 절대 엄마 앞에서는 눈물을 보여선 안 된다’고 달랬죠. 그랬던 제가 정작 아프니까 무너지고 말더라고요.”

그런 그녀가 극심한 우울증에서 벗어나 엄마가 달여주는 인삼차를 열심히 먹었던 계기는 역시나 아들의 힘이었다.

“한 번은 거실에서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데 세 살 된  아들이 배가 고팠는지 냉장고 앞에 상을 갖다 놓고 올라가선 콩조림을 꺼내 놓는 거예요. 그걸 본 순간 제가 뭐하나 싶은 충격이 컸습니다. 보통 아이들은 배고프면 엄마한테 밥 달라고 하잖아요. 근데 제 아들은 ….”

이순자 씨는 서러움에 말을 잇지 못했다. “이건 아니다 싶어 정신을 바짝 차렸습니다. 어머니가 효과를 본 인삼과 느릅나무, 홍삼을 거르지 않고 복용하고, 밖으로만 나가려고 노력했어요.”
이렇게 지낸 지 얼마 후 삶에 대한 희망이 생긴 이순자 씨는 담당의를 찾아가 물었다고 한다.

“선생님 저 언제까지 살 수 있어요? 우리 아이 초등학교 졸업 때까진 살 수 있나요?”

그러자 담당의사는 “몇 살까지 살고 싶냐?”고 물었다고 한다. “50살까지는 살고 싶다.”고 했더니 담당의사가 말하길 “그럼 앞으로 50년 더 살다 가면 되겠네.” 했다고 한다. 담당의사의 이 말은  완치 선고였다.

그로부터 십수 년이 지난 지금 정복선 씨와 이순자 씨는 누구보다 건강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한차례 큰 시련을 겪은 탓에 더 열심히 살고 더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정복선 씨와 이순자 씨는 마지막으로 암 투병 중인 환우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부탁에 이렇게 말한다. “암이요? 그거 사람이 충분히 이길 수 있습니다.

전서현  kunkang198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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